유럽 초현실주의 이집트에 접목한 수준 높은 예술
유럽 초현실주의 이집트에 접목한 수준 높은 예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5.12 13:34
  • 호수 5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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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전

작가 31명의 회화‧사진‧조각 통해 1938~1965년 이집트 미술계 조명
‘예술과 자유그룹’, ‘현대미술그룹’ 등 차별과 억압에 저항해 작품 활동

▲ 케말 유시프의 ‘귀족’(1940년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 이집트.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 나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라오 등으로만 기억한다. 아직까지도 이집트는 수천 년 전의 이미지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 머무른 듯한 낡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지난 5월 8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만난 이집트는 달랐다. 31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집트의 모습은 차별과 억압으로 얼룩진 현실을 초월한 예술세계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이집트의 초현실주의 운동을 조명하는 전시가 국내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이 오는 7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된다. 지난해 이집트 카이로의 예술궁전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를 확장한 것으로 샤르자미술재단, 이집트 문화부, 카이로아메리칸대학의 협력으로 기획됐다. 회화와 사진, 조각, 드로잉 작품 166점이 소개된다.
초현실주의는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이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나타난 미술사조로, 무의식에 기반을 둔 미술운동이다. 1924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계기로 퍼져나간다. 한국에선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이집트는 프랑스 유학

파를 중심으로 활성화됐다. ‘예술과 자유그룹’(1938∼1945), ‘현대미술그룹’(1946∼1965) 등 그룹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가 걸어온 흐름에 따라 크게 5부로 구성됐다. 먼저 1부와 2부에서는 유럽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가 이집트로 전파되는 과정과 영향을 살펴본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대량학살의 비극을 겪은 예술가들은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 무의식에 기반을 둔 초현실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이자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은 ‘독립혁명미술국제연합’을 설립해 유럽을 넘어 세계로 이 운동을 확산시켰다. 이집트에서도 시인인 조르주 헤네인이 이를 받아들여 뜻이 맞는 예술가들과 함께 초현실주의 모임 조직을 추진한다. 람시스 유난, 카밀 알텔미사니, 안와 카밀, 푸아드 카밀 등과 함께 손을 잡은 헤네인은 ‘예술과 자유그룹’을 설립한다. 이들은 1938년에서 1945년까지 그룹 활동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이집트 내 사회적 차별, 억압에 대해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카밀 알텔미사니의 ‘무제’(1941)는 야수파처럼 검고 굵은 테두리 선으로 여인의 누드를 그렸는데, 무릎에 커다란 못이 꽂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을 담았다. 식민지 시절 사회상을 매춘부로 표현한 것이다. 영국군이 이집트 양민을 학살한 ‘딘샤와이 학살 사건’(1950년대)을 그린 인지 아플라툰의 작품 역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반 레오, 만 레이, 모리스 타바르 등 초현실주의를 실험한 이집트 사진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이들은 이중노출, 뒤틀림, 조합 인쇄 및 포토몽타주와 같은 사진 기법을 통해 무의식을 탐구하고 꿈, 황홀경 등 제약 없는 환상의 세계를 표현했다. 이중 반 레오의 작품을 눈여겨 볼만하다. 본명은 레온 보야드지안. 화가 반 고호를 존경해 반 레오로 이름을 바꾼 그는 대비가 뚜렷한 조명과 이중노출 등의 효과로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인물을 연출했다. 스스로 여러 인물로 분장해 찍은 사진들도 눈길을 끈다.
4부에서는 이집트 현대 예술운동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한 ‘현대미술그룹’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이들은 예술이 현대국가로서의 이집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믿고 서구의 예술 교육을 비판하며 평범한 이집트 국민들의 일상, 빈곤과 억압을 주로 묘사했다. 현대미술그룹은 이집트 전통 신화와 우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집트에서 귀족의 색으로 불렸던 ‘녹색’과 고대 미술의 특성인 ‘측면 얼굴’을 많이 사용했다. 케말 유시프의 ‘귀족’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전시의 마지막에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 운동이 막을 내린 후에도 이에 영향을 받아 사회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70년대부터 90년까지의 이집트 예술계를 소개한다. 또한 이집트 미술이 생소할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자료도 준비돼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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