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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파격 행보… 광화문시대 열릴까
[570호] 2017년 05월 19일 (금)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TV프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옴직한 일이다. 직선거리 500m, 걸어서 9분 걸리는 거리를 매일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사실. 대한민국 대통령 얘기다. 과연 국민 가운데 이처럼 비합리적‧비생산적‧비환경친화적인 출근을 하는 이가 또 어디 있을까. ‘모순덩어리’ 청와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청와대는 턱없이 크고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 청와대는 본관, 관저, 비서동(여민1관‧2관‧3관), 영빈관, 서별관, 경비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무려 46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한다. 대통령의 본관 집무실은 무지막지하게 넓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사무실이다. 절대 군주에게 무한복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어주겠다는 설계 목적과 의도가 잘 드러난다.
본관은 지상 2층 건물로 연면적 8476㎡(2564평)에 달한다. 천장 높이가 3m이며, 집무실 입구부터 책상까지 15m에 이른다. 역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비서진은 “문을 열고 책상까지 걸어가는데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너무 넓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고 했다.
이렇게 큰 건물을 여름에는 냉장고 안처럼 시원하게, 겨울에는 온실처럼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 본관 전체에 들어가는 냉난방비면 웬만한 경로당 수십, 수백 곳을 커버 하고도 남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소소한 데에 있지 않다. 국가발전과 국민보호라는 막중한 업무를 부여받은 청와대는 효율성에서도 완전 낙제점이다. 대통령은 수시로 비서실장, 수석들과 얼굴을 맞대고 국정을 논해야 한다. 그런데 비서실장과 수석들은 본관에 있지 않고 그로부터 직선거리로 500m나 떨어진 비서동에 모여 있다.
본관에서 비서동에 있는 여민관까지는 걸어서 15분, 차를 타고 5분이 걸린다. 대통령만을 위한 공간인 본관과 여민관이 동떨어져 있어 소통에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도중 경호도 거쳐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본관 집무실과 관저 두 곳에 모두 서면보고를 했다. 무슨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오면 바로 부통령과 백악관 비서실장 등 참모에게 갈 수 있는 구조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동선도 겹쳐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독일 총리의 경우도 관저와 집무실, 비서진 사무실까지의 거리가 15걸음밖에 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그나마 새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일부분 정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중궁궐 같은 본관 집무실을 버리고 여민관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관저에서 여민관까지 출근할 때도 걸어서 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대한민국에선 이런 것조차 뉴스거리가 되고 일부에선 “신선하다”, “대통령 제대로 뽑았다”는 말까지 한다. 대통령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아니다. 국민이 잠시 국가운영을 맡아 달라고 의뢰한 ‘국정 대리인’일 뿐이다. 대통령을 신성시하는 잘못된 인식과 대통령 앞에만 가면 굽신거리고 움츠리는 저자세의 습관을 고쳐야 한다.
미국은 처음에 대통령을 의미하는 단어를 고를 때 무척 고민했다. 결국은 권력집중을 우려해 ‘프레지던트’(President)로 했다. 당시 프레지던트는 회의를 주관하는 이를 의미했다. 대통령을 부를 때도 친근감 있게 ‘미스터’(Mr)를 앞에 붙여 ‘미스터 프레지던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여민관의 집무실을 버리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 청와대 참모, 직원들의 사무실을 두겠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한다고도 했다.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선거공약의 이행이겠지만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파격적인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청와대 본관 집무실과 여민관의 집무실, 관저의 집무실(박근혜 전 대통령) 등 청와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호 문제를 떠나 집무실을 도심 한가운데로 옮기면서까지 국민에게 다가가겠다며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는 대통령. 그가 취임식에 했던 말 그대로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강력한 나라를 만들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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