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과 영훈의 한 쌍은 미란과 단주의 쌍보다는 세란에게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미란과 영훈의 한 쌍은 미란과 단주의 쌍보다는 세란에게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5.19 13:10
  • 호수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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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36>

“애초에 자기들끼리 시작한 일을 지금 와서 날 조르면 어떻게 되누. 단주의 맘을 내가 모르는 것같이 미란의 맘두 내게는 알 수 없는 것이거든.”
자기 손을 벗어나서 달아난 바에는 당사자끼리의 임의라는 듯 자기들끼리 처단하라는 듯――그런 어조였다.
“동경을 가느니 음악을 시작하느니 하면서……”
단주의 불만의 진의를 또렷이 알았을 때 현마도 말머리를 돌린다.
“동경행은 나두 성공이라구는 생각지 않네만.”
성공이 아니라 실패였다. 마음의 기대와는 어그러져 조금도 잇속은 없었고 현마에게도 불만의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천재병에 걸려들어 천재 아닌 건 사람으로 치기나 한다구. 잔뜩 교만한 맘에 어떻게 달아날는지……. 폭 씌인 병이라 졸연히 낫지 않을걸.”
두 사람 마음속에 똑같이 떠오르는 것이 영훈의 자태였다. 단주에게 영훈이 질색인 것같이 현마에게도 유쾌한 존재는 아니었다. 미란이 조르는 것을 이기지 못해 서둘러 준 것이었고 도시화(禍)의 근원이 미란을 소녀의 음악회에 데려갔던 때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현마는 그때의 불찰을 지금껏 뉘우쳐 오는 중이었다. 예술을 말하고 음악에 혹하고 천재를 찬양하는 것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까닭이다.
“자기가 천재가 못되는 때는 밖으로 천재를 구하고 숭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이거든.”
말할 것도 없이 영훈은 미란이 구하는 바로 그 대상으로 나타난 것임을 현마도 모르는 바 아니었고 영훈이 들어섬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미란의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던 모든 것이――별도 하늘도 나무도 꽃도 영화배우 되려는 희망도 현마도 세란도――그리고 물론 단주까지도――미란의 마음속을 떠나 버렸음을 못 느낄 바 아니었다. 섭섭한 일이기는 하나 마음의 자유는 어쩌는 수 없는 것이며 한번 굴레를 벗어나 닫기 시작할 때는 인력으로는 붙드는 재주 없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단주의 몫까지 걱정해줄 여가가 없이 자기 자신의 마음의 불만을 가지고 있는 현마였다. 단주의 하소연이 자기에게는 어려운 숙제여서 그것을 정리는커녕 구슬려 놓는 도리조차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엉뚱한 사람을 집에 거둬 넣고는……. 무엇이 되나 보지, 집 꼴이.”
단주의 걱정에 현마도 적어도 속으로는 동의를 표하면서 이제는 같은 처지의 불행을 나누는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시원할 때까지 놓아두는 수밖에는. 그 외에 다른 도리 있어야지.”
비관적 결론을 내리고는 모르는 결에 실토를 하게 된 것을 어른답지 못한 것으로 여기면서 현마는 금시 오도깝스럽게 표정을 누그러트리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헤적헤적 웃는 것이었다.
영훈을 맞이한 지 두어 주일 되었을 때 미란의 발기로 집에서는 조그만 환영의 잔치가 계획되었다. 가장 유쾌하게 서두르는 것은 물론 미란이어서 손수 부엌에 들어가 옥녀와 함께 음식을 장만한다, 대청을 치운다, 수선거리는 것이 세란에게는 자기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은 먼 옛날이었던 것만 같아 부럽게 보였다. 미란이 맞이하려는 청춘의 기쁨은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그것보다는 한 시대나 젊은 것인 듯 영훈과 미란과의 사이가 아무쪼록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축수하는 마음조차 일어났다. 당초에 그날의 계획에는 미란만이 아니라 세란의 뜻도 첨가되어서 세란은 현마나 단주와는 달라 영훈을 의외의 침입자로 생각하는 축이 아니고 도리어 기뻐하고 미란과의 사이를 원하는 편이었다. 미란에게서 단주에게 대한 주의를 떼자는 것, 단주의 자리에다 영훈을 앉히자는 것, 단주를 고립시켜서 자기에게 대한 의식을 선명하게 하자는 것――그런 속심에서 나온 것은 물론이다. 야심이 없을 때에만 다른 한 쌍은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미란과 영훈의 한 쌍은 미란과 단주의 쌍보다는 세란에게는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두 사람을 눈앞에 보고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 즐거웠다. 그날의 잔치도 그런 마음의 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잔치래야 스스럽지 않아진 터이라 가정적인 조촐한 것이었고 다르게 말하면 하나의 조그만 음악회여서 이른 만찬이 끝난 후에는 영훈의 독주와 두 사람의 듀엣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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