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가 어안이 벙벙해 서 있을 때 옥녀는 납신거리며 두려울 바가 없었다
단주가 어안이 벙벙해 서 있을 때 옥녀는 납신거리며 두려울 바가 없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6.02 13:51
  • 호수 5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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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38>

“뜨끔했지……. 고춧가루를 먹었나. 얼굴이 저렇게 상기가 됐게.”
“왜 풀숲엔 숨었니.”
“숨긴 누가 숨어. 나 있는 곳으로 됩데 오구두.”
언제부터인지 농을 트게 된 사이였다. 단주가 옥녀를 수월하게 여긴 것과 마찬가지로 옥녀도 나 어린 단주를 세란들과는 달라서 만만하게 볼 수 있었다.
“방안에서들은 저렇게 즐겁게 노는데 또 심술인가. 혼자만 튀어나왔게.”
“뭘 안다구 버릇없이.”
“보나 안보나 이거지.”
팔뚝으로 밀쳐내는 시늉을 하면서 외눈을 질끈 하니 단주는 눈을 부릅뜨고 발을 구른다.
“까불면 용서 없다.”
“무슨 턱으로 뽐을 내. 부뚜막에는 독판 오르면서.”
단주에게는 매일 것이 없다는 듯이 어려워하지 않는 옥녀의 말투, 단주가 어안이 벙벙해 서 있을 때 옥녀는 납신거리며 두려울 바가 없었다.
“사람이 뺀질뺀질해두 유분수지. 생떼같이 뛰어들어 백지(白地) 집안을 쓸어가자는 셈이지. ――내가 만약 작은아씨라면 까딱 집에 붙이지두 않겠다.”
그제서야 단주는 말눈치를 짐작했다. 세란과의 관계라면 아침저녁으로 시중을 든 옥녀만큼 눈치 빠르게 알아왔을 사람은 없었겠고 비밀의 열쇠가 그의 손에 간직되었을 것은 정해 논 이치였다.
“말만 냈다 봐라.”
황당해서 어성을 높인다.
“겁이 나나 부지.”
“번설만 했다간 이 집에 붙어 있지 못한다 괜히.”
“큰소리 작작해. 누군 붙어 있게 되구. 그렇게 되는 날에는 집안이 한바탕 뒤집히구야 말걸, 무얼 믿구 큰소리야. 불한당 같으니.”
맞거는 데는 허물 가진 몸이라 꿀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단주는 공연한 벌집을 헤적거려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뉘우침이 났다.
“정말 그러기냐.”
목소리를 누그리면 옥녀는 도리어 기세나 얻은 듯 법석이다.
“숨은 도적같이 세상에 미운 게 있는 줄 알구. 집안을 휘저어놓구는 욕심스럽게 그래두 더 가져갈 것을 찾느라구 두리번거리는 도적. ――숨은 간교가 언제나 안 드러날 줄 알구. 눈앞에서 코를 베이려구. 나으리가 아무리 사람이 좋기루 부처님두 성을 낸다구, 알어만 보지.”
“누구 앞에서 이렇게 대서. 괜히 거슬려만 봐라.”
“모르는 주인에게 뙤어 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구 그럼.”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의외의 적이 나섰음에 놀라며 그 굳건한 대항을 좀체 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불안한 마음이 불현듯이 솟았다. 미란만을 생각하고 그가 마음의 대상의 전부였음이 얼마나 행복스러웠던가를 느끼며 이제는 벌써 새로운 근심으로 해서――허물의 발로로 해서 미란을 생각함이 불측스럽고 그럴 자격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눈앞이 어두워지는 듯도 하다. 옥녀가 큰 난관이 될 줄야 누가 알았으랴. 그의 입을 봉해 놓음이 지금에 있어서는 급선무임을 느끼면서 옥녀의 자태가 여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어리었다.
“정말 번설만 했다간…….”
버썩 나서면서 위엄을 냈을 때 옥녀는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뻣뻣스럽게 맞섰다. 오돌진 태도에 단주는 화를 버럭 내며 반들반들한 얼굴에 손찌검을 하면서 다짐을 받으려고 한편 팔을 잡아낚았다.
“주제넘게 사람을 왜 쳐. 가만있을 줄 알구.”
화를 내면서 옥녀는 손을 뿌리쳐 빼고는 샐쭉해서 외면해 버린다. 단주는 황당해지고 마음이 설레면서 옥녀를 잡으려 할 때 옥녀는 치마폭을 뿌리치고는 달아나는 것이다. 초라니를 놓쳐서는 큰일이 날 듯해서 손을 뻗치면서 뒤를 쫓았다. 풀숲을 뛰고 꽃포기를 휘무즈리고 가시덤불을 넘어서 지름길을 뱅뱅 돌면서 흡사 술래잡기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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