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대통령’의 파란만장했던 일대기 재조명
‘바보 대통령’의 파란만장했던 일대기 재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6.02 14:10
  • 호수 5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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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무현입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재조명하는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1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

2002 대선 경선 기록과 안희정 지사 등 39명의 인터뷰 담아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인간미 부각시켜

2002년 대한민국은 두 가지 색으로 기억된다. 6월의 ‘빨강’과 12월의 ‘노랑’이 그것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붉은악마의 응원을 등에 업고 2002 한일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당선보다 낙선이력이 더 많은, 2%도 안 되는 지지율을 가졌던 노무현 후보는 당시 급성장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열광적 지지를 안고 롤러코스터를 탄 행보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붉은 유니폼의 대표팀은 여전히 달리고 있지만 ‘노사모’ 신드롬을 일으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지난 5월 25일 개봉된 한 영화가 15년간 감춰뒀던 기록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10일만에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1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에 맞춰 내걸린 이번 작품은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제 당시의 기록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방식을 취하고 있다. 19대 대통령이자 전 참여정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전 보건복지부장관 유시민 작가, 노무현 캠프의 참모였던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해 인권변호사 동지, 청와대 참모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활동했던 시민들까지 총 39명의 인터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중앙정보부 말단으로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감시했던 이화춘 전 요원이 주 화자로 등장해 영화를 이끌어간다. 노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다 매력에 빠지게 된 그의 이야기와 개인 운전사의 결혼식 날 신혼여행지까지 직접 운전해서 배웅했던 전직 대통령의 모습 등 알려지지 않은 에피스드는 고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 대입까지 포기해야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진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국회의원, 시장 선거 등 출마하는 선거마다 번번이 낙선했던 그였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도입된 새천년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고, 전국 16개 도시를 돌며 ‘거짓 없는 진심의 유세’로 지지층을 확보해나갔다. 어떠한 연줄도 없던 그는 경선 초기, 지지율 바닥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지만 제주 경선 3위를 시작으로 울산과 광주를 석권하며 노풍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그가 찾는 지역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 생겼고, 노사모 회원들은 돈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유세에 동참하는 열의를 보였다. “한 번 빠지면 평생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이화춘 요원의 말처럼 ‘노사모’ 회원들은 아이돌 팬클럽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를 가능케 한 배경엔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상고 출신, 장인의 좌익 활동 이력 등은 경쟁자와 보수 언론의 공격과 조롱 대상이 됐지만 그는 이를 숨기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돌파했다. 특히 “저는 그 사실(장인의 좌익 이력)을 알고도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라고 말한 장면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연출은 ‘사이에서’, ‘길 위에서’, ‘목숨’ 등을 통해 사람에 대한 남다른 시선과 깊이 있는 연출로 휴먼 다큐멘터리의 새 지평을 열어온 이창재 감독이 맡았다. 노 전 대통령과 지인들의 내밀한 교감을 담고 싶었던 이 감독은 정면 촬영(Face to Face) 방식으로 인터뷰 화면을 담았다. 1/4 측면 앵글과는 달리 마치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방식의 인터뷰로 인해 지인들의 이야기는 호소력을 준다. 이중 노 전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그의 모든 선거에 중용했던 선거 전문가 배갑상의 인터뷰는 큰 울림을 준다.
“화를 내는데 그 밑에 슬픔이 보여요. 슬퍼서 화를 내는 거에요. 자기 가슴을 먼저 열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매료당해요.”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고 인사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뒷모습과 친숙한 음성 역시 관객들에게 묵직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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