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재 용인시 기흥구지회장 “‘백세시대’ 신문보고 봉사할 마음 생겼어요”
조영재 용인시 기흥구지회장 “‘백세시대’ 신문보고 봉사할 마음 생겼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6.09 11:32
  • 호수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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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과 나와 제약회사 근무… 뇌 공부해 치매퇴치운동 전개
“30년 배워온 시조창 불러주면 눈물 흘리는 노인도 있어요”

올해 노인 관련 화두는 단연코 ‘치매’이다. 조선대 치매국책연구단은 최근 한국인 표준 뇌 지도를 통해 치매 발병 가능성을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의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치매 치료와 간병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나눠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발 빠르게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가 있다. 조영재(76) 대한노인회 용인시 기흥구지회장이다. 조 지회장 덕분에 기흥구의 4만2000여 노인들은 적어도 치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6월 초, 용인시 산양로에 위치한 기흥노인복지관 3층에서 만나 치매 예방법과 지회운영 철학을 들었다.

-어떤 식으로 초기 치매 증상을 가리나.
“우리 지회는 재능나눔활동을 치매환자 조기발견에 주력합니다. 지난 3월부터 5월말까지 경로당 회원 1100명을 대상으로 ‘치매 두근두근 기능조사표’로 검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 2차 검사대상 108명을 찾아냈고 최종적으로 7명의 치매환자를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과정을 밟게 되나.
“용인시에는 삼성전자가 지원하는 치매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의사의 진찰을 받습니다. 각종 치매 진단 검사가 있지만 가장 정확한 진단은 뇌 사진 촬영입니다.”

조영재 지회장은 일본의 예를 들었다. 구마모토 현의 경우 노인이 1만명이면 치매환자를 발견하고 도와주는 ‘치매 서포터즈’는 5만명이다. 이들은 환자를 가족처럼 돌봐준다. 치매 행사에 참가하고 길을 가다가도 치매환자가 보이면 적극 도와준다. 조 지회장은 지회 행사 때마다 “우리도 일본처럼 ‘치매 서포터즈’ 요원을 확보해 치매 없는 장수 동네를 만드는데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해오고 있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뇌의 해마가 튼튼해야 치매에 걸리지 않아요. 치매는 해마라는 세포에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여 세포가 파괴되는 뇌 질환입니다. 뇌 운동을 많이 해야 치매를 예방할 수 있어요.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어 뇌를 고생시키는 것도 좋지만 신문을 많이 읽는 것도 방법입니다. TV 보는 시간에 신문을 보세요.”
-회원들에게 직접 강의도 하는가.
“치매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같은 노인성 질환의 전조 현상에 대해 노인대학에서 강의하고 분회 회의 때도 찾아가서 합니다.”

조영재 지회장은 용인 출신이 아니다. 경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생물학과를 나왔다. 서울대병원연구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연구를 했다. 한독약품‧제일약품 등 제약회사에서 오래 일했다. 강연을 위해 지금도 영어로 된 의학논문을 읽는 등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주말마다 뇌 과학 공부모임인 ‘자연과학세상’에 나갔고, 매월 2회 대학 연구실에서 의학 논문을 읽으며 강의도 듣는다. 조 지회장은 “삼성‧아산병원의 신약개발 심포지움, 건강세미나 등에도 참석해 의학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신문 때문이지요. ‘백세시대’ 신문이 저를 지회장 자리까지 오르게 했고, 저의 노후에 보람된 일거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 지회장은 7년 전, 퇴직 후 바둑을 두면서 소일하던 중 우연히 경로당 우편함에 꽂혀 있던 ‘백세시대’에서 ‘노노케어’란 단어를 발견했다. 한자 표기가 됐으면 바로 알아봤을 테지만 한글로만 돼 ‘케어를 부정한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조 지회장은 “신문을 읽고 나서야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말이란 걸 알았다”며 “누가 만들었는지 좋은 용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꾸만 그 단어가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 조영재 지회장이 지회 교육실에서 뇌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조 지회장은 며칠 후 경로당을 찾았다. 자신이 거주하는 어은목마을(동백동)의 한라비발디경로당이다. 조 지회장은 충격을 받았다. 여성회원들이 관절‧혈압‧심장‧두통‧감기 등 온갖 질병의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을 보고서다. 조 지회장은 “과다한 약복용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제가 할 일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자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면서 가슴이 막 뛰었다”며 경로당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당시 일을 들려주었다. 이후 경로당에 과학적인 건강정보를 전해주자 회원들은 조 지회장을 회장 자리에 추대했다. 조 지회장은 “경로당 회장에 이어 노인대학장을 3년간 했고 대학장 시절에 얻은 인기에 힘입어 지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노인대학에서 어떻게 했길래.
“노인대학에 가보니 노래 부르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래도 대학이라면 학습효과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인의 4고(苦) 중 하나인 질병에 관한 의학상식을 가르쳐주었더니 다들 좋아했어요.”
기흥노인복지관에 나오는 유덕수 어르신은 “조 학장님은 강연도 잘 할뿐더러 마음도 따뜻한 분”이라고 말했다. 조 지회장은 50대 초반에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서울을 떠나 지리산 청학동 토굴에서 3년간 지냈다. 그때 시조창의 대가로부터 목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혹독하게 시조창을 배웠다. 노인대학생들은 조 지회장의 시조창을 듣고 위로와 감동을 받는다.
-외지 출신이라 지회장 선거가 힘들었겠다.
“선거법에 걸린다며 지회 사무국에서 경로당 회장들 전화번호조차 가르쳐주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그러나 노인대학생들이 제 선거운동원이 돼 주었습니다. 하루는 자연부락 경로당 회장을 만나러 농사짓는 무밭까지 찾아가 고무장갑 낀 그분의 손을 덥석 잡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자 저를 좋게 봤는지 제 선거운동원이 돼주기도 했어요.”
-지회 운영 철학이라면.
“경로당 회장의 의식이 변해야 경로당이 변합니다. 회장이 고스톱을 좋아하면 화투치는 분위기가 됩니다. 회장이 컴퓨터를 잘 다루면 인터넷에서 건강 강의를 다운 받아 회원들에게 보여주는 경로당도 있어요.”
조 지회장은 ‘경로당에 길을 묻다’란 제목으로 회장의 의식변화 촉구를 위한 학습운동을 벌이고 있다. ‘치매 발생 기전 및 예방’(박문호)을 비롯해 ‘저금리시대 노인의 자산관리법’(박현섭 금융감독원 팀장), ‘비움의 철학’(전보산 경기박물관장) 같은 인문학 강연을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한다. 조 지회장은 “경로당 회장과 만나는 기회가 적어 이런 교육을 통해 회장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흥구지회는 노인 일자리사업에 중점을 두고 탁월한 성과를 올려 수차례 우수지회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경로당 마다 셋톱박스를 설치해 TV를 통해 각종 정보와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동영상 시스템을 준비 중이며, 노인대학에 못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로당 대학’도 대폭 증설할 계획이다.
-100세시대 노인의 역할이라면.
“사회를 책임진다는 건 너무 거창하고요. 품격 있는 노인이 되자, 봉사하는 노인이 되자,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의연하게 받아들이자, 마지막으로 돈 좀 쓸 줄 아는 노인이 되자.”
인터뷰에 배석했던 이희숙 기흥구지회 사무국장은 “조 지회장님은 개인적으로 아무도 모르게 독거노인을 돕고 계신다”고 귀띔했다.

조영재 기흥구지회장은 “학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나이에 무슨 사이버대학에 공부하러 다니고 했겠느냐”며 “배워서 가르쳐야 할 데가 있으니까 바쁘게 사는 거고 그러한 노노케어의 삶이 보람 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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