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본군 병사의 처절한 고백
어느 일본군 병사의 처절한 고백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6.09 13:33
  • 호수 5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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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이미 천황에게 바친 것이다. 그런 이상 매매춘 따위로 더럽힐 수 없다.”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일본 소년병 와타나베 기요시가 군전용 위안소를 거부하며 한 말이다. 그는 1941년 16세 나이로 일본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싸우다 죽는 순간까지 총각으로 남기를 소망할 정도로 천황을 우러르고 받들었던 그가 패전 후 천황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천황이 맥아더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패전의 책임이 전적으로 천황에게 있으며 천황은 일본 국민에게 잘못을 사죄하고 자리에서 물려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황제는 폐지되고 천황은 머리를 깎고 불문에 귀의하거나 전몰자 묘지의 묘지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와타나베는 자원입대에 대해서도 뜨거운 참회를 했다. 그는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전쟁은 태풍처럼 자연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정의를 위해서’라고 배웠다. 그러나 전쟁은 무모한 침략전쟁이자 타국에 대한 뻔뻔한 강도질이었다는 것을 패전 후에야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렇더라도 전쟁을 찬양했고 심지어 지원까지 해가며 참가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것만은 나 아닌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는 책임이라고 실토했다. 와타나베는 자원입대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이 지금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군대에 지원하는지 또, 장차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한 것이 굉장히 후회된다고도 했다.
후지산 자락에 위치한 시즈오카 현의 촌락에서 태어난 와타나베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는 일본의 거대 전함 ‘무사시’가 필리핀 시부안해에서 어뢰와 미 공군기의 집중포화를 받아 침몰했을 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겪은 정신적 갈등과 고뇌를 담은 책 ‘산산조각난 신’(1977년․번역본 글항아리․2017)을 펴냈다. 이 책은 발간 즉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은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와타나베의 마을 사람들은 전쟁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치렀다. 종묘상집 장남 닷페이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자 집안에선 전사한 줄 알고 마을장까지 치렀다. 그리고 닷페이 동생 야스조와 닷페이 부인 사치코와 부부의 연을 맺도록 했다. 야스조는 “나도 속으로 생각해둔 여자가 있지만 가족이 모두 원한다면 따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닷페이가 나타났다. 닷페이의 아내 배는 볼록해 있었다. 임신 7개월이었다. 닷페이는 낫을 들고 사치코에게 휘둘렀다. 사치코는 남편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여보, 용서해줘요. 제발요. 모르고 그랬으니까 용서해줘요. 제발!”이라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닷페이는 “내 동생만 아니었으면 둘 다 죽여 버렸을 거야. 다시는 내 앞에 낯짝도 비치지마”라며 낫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갔다. 4년 만에 돌아오자마자 앉지도 못한 채 바로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와타나베는 혼자만 살아 돌아온 일이 미안하고 괴로울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무사시에서 함께 근무했던 아이카와의 부모가 와타나베를 찾아왔다. 아이카와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죽을 때 많이 괴로워하던가요?”라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카와는 시부안 해역에서 파편에 왼쪽 어깨와 하복부 두 군데를 맞아 큰 부상을 당했다. 찢어진 옆구리에서 벌컥벌컥 솟아나는 피도, 고통 때문에 파들거리던 흙빛 얼굴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이카와는 붕대로 둘둘 감긴 채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의무실 벽의 철판을 손톱으로 긁으며 신음하다 무사시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와타나베는 “아이카와는 가슴에 로켓탄을 맞고 즉사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카와의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이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몇 번이나 캐물었다. “정말인가요? 우리를 위로하려고 지어낸 얘기는 아니지요? 정말이지요?” 와타나베는 대답했다. “저는 전투 중에 아이카와와 쭉 같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사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와타나베는 일본전몰학생기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다 1981년 56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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