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를 금시 붙잡을 듯 연못을 건너뛴 것이나 피곤한 맥에 흔들 미끄러진다
옥녀를 금시 붙잡을 듯 연못을 건너뛴 것이나 피곤한 맥에 흔들 미끄러진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6.09 13:37
  • 호수 5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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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39>

“붙잡아 보지 용 용.”
화단을 건너서 자작나무 아래로 간 옥녀가 눈을 까면서 으르면,
“붙잡기만 해봐라.”
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고꾸라질 듯이 달리면서 덩달아 으르렁댄다.
“내 입만 여는 날이면 저 꼴 무엇이 될까.”
옥녀가 연못을 돌아 라일락 숲에 몸을 세웠을 때 단주는 한번 거리가 뜬 그를 따르기가 조련치 않아서 돌부리에 채이고 찔레가시에 걸리면서 숨이 찼다.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납신거리는 옥녀를 손쉽게 잡으려면 단숨에 연못을 건너뛰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입을 열기 전에 혼을 뽑아 놓거든.”
눈앞의 옥녀를 금시 붙잡을 듯 단걸음에 연못을 건너뛴 것이나 피곤한 맥에 아찔해지면서 돌 모서리가 발밑에서 흔들 하고 미끄러진다.
“아차차!”
옥녀가 소리를 쳤을 때 단주의 몸은 헐어지는 돌과 함께 주르르 미끄러지면서 못 속에 하반신이 밀려들었다. 미처 발버둥을 칠 새도 없이 몸은 물속에 잠겼다. 럭비를 놀 때의 볼을 잡고 넙죽 엎어진 모양과도 같고 네 활개를 펴고 풀잎에 누운 개구리의 시늉과도 흡사했다. 못가의 풀뿌리를 붙들고 못 속으로 반신을 뻗은 채 넙죽이 엎드린 양이 가엾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워서 옥녀는 한참 동안 깔깔 웃음을 대는 수밖에는 없었다.
“남을 쫓다가 싸지. 혼자 보기 아까운걸.”
손벽이라도 치고 싶게 통쾌한 것이었으나 단주 자신으로 보면 그런 겸연쩍고 가엾을 데는 없었다. 옥녀 혼자 보았기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보았던들 얼마나 참혹한 꼴이었을까. 흙 위에 엎드려서 냉큼 일어나지도 않고 상기된 눈으로 옥녀를 반듯이 치어다보는 것은 부끄러운 탓일까 원망하는 것일까. 마주보기가 무서우리만큼 찡그린 험상궂은 표정이었다.
“얼른 일어나지 못하구 무슨 꼴야.”
움직이는 기색이 없이 그대로 엎드려 있는 것이 이상해서 옥녀는 술래의 자격을 면하고 이번에는 동정하는 태도로 연못가로 향했다.
“다쳤단 말인가.”
앞에 가서 부축해 주려고 손을 내밀고 몸을 굽혔을 때 단주는 기운이나 얻은 듯 옥녀의 손을 붙들고 벌떡 일어나더니 그 손으로 옥녀의 어깻죽지를 보기 좋게 갈겼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남을 이렇게……”
옥녀가 대거리를 하려다가 즉시 멈추어 버린 것은 단주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본 까닭이다. 젖어서 종아리에 들어붙은 바지에서는 물이 흘렀다. 그 초라한 꼴로 다리까지 저는 것을 볼 때 측은한 생각이 나면서 자기의 탓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해서 오늘의 이 장난이 시작되었던고 하면서 짜장 자기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누가 당초에 뜰로 나오랬나. 방에나 가만히 있지.”
집 안에서들 내다보지나 않을까 해서 옥녀는 창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단주를 라일락 그늘 속으로 끌어들였다. 부상병같이 절름거리면서 풀 위에 주저앉았을 때 한편 무릎 위로 피가 내배어 있음을 보았다. 돌부리에 무릎을 상한 것이다. 다리를 걷어 올리고 마른 수건으로 피를 훔쳐내는 그 꼴이 전에 없이 가엾게 여겨지면서 방 안 사람들과 스스로 대조되는 것이었다.
잊고 있었던 음악소리가 다시 귀에 들려오면서 방 안의 단란이 짐작된다. 《월광곡》이 끝나고 쇼팽의 《환상곡》이 시작되어 있었다. 옥녀에게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는 없으면서도 은근하고 미묘한 곡조가 행복과 기쁨을 나타내는 것임만은 짐작하면서 방 안의 행복에 비겨 초라한 단주의 꼴이 더욱 눈에 띄었다. 제 스스로 트집을 잡고 단란을 벗어나온 것이기는 하나 국외자로서 볼 때에는 그 쓸쓸한 꼴에 마음이 움직여진다. 웅크리고 앉아서 상한 무릎을 매만지는 모양이 무대에서 쫓겨난 등장인물과도 같고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뛰어나온 이야기 속의 인물과도 같으면서 넋 잃은 그림자가 저녁 그림자 속에 외로웠다.
“얼른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용감하게 대청으로 나가요.”
무대감독이나 되는 듯 단주를 격려시키면서,
“조화 많은 집안의 형편이 대체 어떻게 되어 나갈꼬.”
하고 집안에 숨은 역사가 궁금히 여겨진다. 수풀 속의 비밀같이 꽃 속의 비밀같이 밖에는 드러나는 법 없어 한정된 속 세상 안에서만 풍파를 일으키면서 어지럽게 열려 가는 집안의 앞일이 단주의 앞일과 함께 궁금히 생각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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