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세대교류
글쓰기와 세대교류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7.06.23 11:33
  • 호수 5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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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오랫동안 병석에서 고생하시던 아버님이 9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출석하시던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셨기 때문에 교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 장례식 순서에 따라 아버님의 몇 년 후배 되시는 분이 조사를 낭독했는데, 아버님에 대해 나도 잘 모르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 중 아버님을 이름으로만 알 뿐 과거에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오랫동안 교회가 쇠하지 않고 발전되는 것은 역사의 고비마다 선배 신도들이 지혜를 모아 당대의 사업을 잘 경영했거나 혹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역경을 잘 이겨낸 결과일 것이다.
한 교회가 전통을 수립하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여러 모양으로 신앙의 전수가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비단 종교기관만이 아니라 국가나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이나 사회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대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인류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대교류가 잘 이뤄져야 한다.
서로 다른 세대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동일한 사건을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거나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세대 간 가치관 및 사고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난다. 장노년층은 과거에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자신과 가정을 희생했고, 여가를 즐기기보다 일과 성취를 중시하고, 위계와 수직적 질서에 익숙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세대이다.
이에 반해 청년층은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고 전통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며, 개방적이고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문화의 변화에 대한 수용 속도가 빠른 세대이다. 장노년층이 경험했던 산업사회의 시대적 어려움과 청년층이 경험하고 있는 경쟁사회에서의 생존의 어려움이 공유되어야만 세대갈등을 줄이고 통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전국의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년 국민통합 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50.1%)은 세대갈등이 사회갈등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이라고 답했다. 이와 같이 가정과 사회에서 양 세대의 인식과 행동양식의 차이는 사회의 결속과 통합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라 보여진다.
하지만 세대 간 원활한 의사소통 및 이해구조, 그리고 세대 간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세대 간 차이를 줄이고 화합을 증진시킨다면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 국가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세대는 상호간에 가치관이나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조화할 수 있는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 세대교류는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몰인간적 가치관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한 공동체적 가치관으로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면 세대교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세대간 글쓰기 공동작업’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식은 많아졌으나 올바른 판단력은 줄어드는 이 시대에 인간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키워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는 데 글쓰기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모스 교수가 일전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짧은 글이라도 매일 쓰라. 그래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고도 했다. 요즈음 대학마다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실행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어르신들은 과거에 가정과 사회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안 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이 있다. 뛰어난 지략과 끈기 있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였거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계획하지 못했지만 천우신조로 원하는 것 이상을 달성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글쓰기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글쓰기는 어르신들의 창의적 여가선용의 매우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세대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노인복지관, 사회교육기관, 종교기관 등은 어르신과 젊은이 한 명씩을 한 쌍으로 묶어 어르신은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젊은이는 이 회고담을 타이핑하면서 한 편의 글을 엮어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젊은이는 옛날 얘기를 들으며 어르신의 쓰라린 과거를 이해하고, 어르신은 대화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이다. 신나고 통쾌한 대목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얼싸 안고 춤을 출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 공동 작업을 하면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글을 수정 보완하는 동안 인생과 역사의 뒤안길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원초적 애정과 증오, 인간능력의 가능성과 한계성, 그리고 지혜와 자비의 덕(德)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대화와 글쓰기의 공동작업을 통해 얻은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의 결과물이 책으로 출판되어 보급된다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권장되고 있는‘세대교류 문화’창출에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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