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가발
단풍 색으로 할 걸 그랬나?
이왕 하는 가발
여린 잎 초록색이
더 어려 보이겠지, 어때?
이시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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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디카시다. 하회탈 장승 머리에서 진초록 담쟁이 가발은 참으로 잘 어울린다. 한 살이라도 더 어려보이고 싶은 욕망이 이리 푸르게 자란 것일까. 봄부터 연초록에서 진초록을 거쳐 단풍 색까지, 계절마다 각각 다른 가발을 맞춰 쓰면서 장승은 날마다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어 저리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잠깐 가발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다시 봄이 되면 저렇게 무성하게 뒤덮여 회춘할 수 있을 테니, 그러니 걱정 하나 없을 수밖에.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들고 /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우탁).’ 어떻게 해도 늙음을 막을 수 없다는 탄식이 짙게 배어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 뿐이다. 80대에도 청춘 못지않게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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