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콜 독일 수상에게 통일 비결 배워라
고인이 된 콜 독일 수상에게 통일 비결 배워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6.23 13:29
  • 호수 5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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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을 완성한 서독의 헬무트 콜 수상이 6월 16일 타계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독일도 지금까지 우리와 같은 분단국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의 서거를 보면서 “우리는 왜 그와 같은 ‘정치협상의 달인’이 없을까”하는 무한한 아쉬움이 들었다.
콜은 탤런트 최불암처럼 넌센스의 대상이 될 만큼 평범한 정치인이었다. 독일 시사 잡지 ‘데어 슈피겔’은 그를 ‘본의 얼간이’라고 조롱했다. 그에 관한 조크가 한때 회자된 적이 있다. 이런 식이다.
콜이 정원을 청소하다가 수류탄을 세 개 주웠다. 아내와 함께 그 수류탄을 경찰서로 가져가는데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여보,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터지면 어떡하죠?” 그러자 콜이 말했다. “걱정하지마. 경찰에게 두 개를 주웠다고 말하면 되니까”.
헬무트 콜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는 독일 통일의 걸림돌이 무엇인가 파악했다. 소련이었다. 그는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만나 동독 주둔군 철수를 요청했다. 소련군 35만명이 복귀하는데 드는 돈은 모두 서독 정부가 부담했다. 그 이전에 동독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과 만남을 가진 건 물론이다.
영국‧프랑스 등 주변국도 통일을 가로막는 적이었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특히 심했다. 대처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마자 모스크바‧바르샤바‧워싱턴으로 바쁘게 다니며 독일 통일 반대론을 확산시켰다. 콜은 이들을 향하여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우리 독일인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며 국제사회의 언제나 좋은 이웃이 되겠다”고 거듭 안심시켰다.
콜의 통일외교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는 고르바초프와 냉전종식을 공동선언한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독일 통일을 지지하고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에게 영국‧프랑스‧폴란드 심지어 소련 설득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콜이 통일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90년 7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콜은 경제파탄과 크렘린 내 보수파의 반발에 입지가 흔들리는 고르바초프 구하기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두 사람이 본의 라인 강변을 걸으며 나눈 얘기는 외교사에 전설로 남았다.
고르바초프가 불쑥 물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 식량 부족 사태가 오면 도와줄 수 있나”. 콜은 즉석에서 “그러지요”라고 대답했다. 그해 콜 정부는 2억200만 마르크 상당의 쇠고기‧통조림‧돼지고기‧버터‧분유‧치즈‧구두‧기성복을 보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겨울나기를 도왔다. 이런 정성이 고르바초프의 마음을 녹였다.
우리나라도 콜과 같은 인재가 없는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콜과 같은 능력을 가졌고 콜과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에 의해 남북 통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독일 통일에 소련이 걸림돌이었듯이 우리에게 걸림돌은 중국이다. 시진핑에게 남북의 통일이 중국에 도움을 줄지언정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설득시켜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 서준다면 더욱 좋다. 가능한 일이다.
동독의 마음을 돌리는 일보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건 수백 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매자를 찾으면 된다.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수상이 중간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메가와티의 아버지 수카르노와 김일성은 1960년대 ‘비동맹운동’으로 형제가 됐다. 메가와티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도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다. 그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가능하고 그 자리에서 통일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콜 총리가 평화의 손짓으로 주변국들을 안심시켰듯이 통일을 질시(?)하는 일본과 소련에게도 비둘기를 날려야 한다. 아베와 푸틴을 찾아가 통일된 남북의 군사력이 그들 국가에 위협을 주지 않고 오히려 아‧태지역의 평화와 힘의 균형에 기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시켜줘야 한다.
통일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져야 한다. 재고 따지고 들면 되는 게 없다. 덩치 큰 콜이 민첩하게 걸었던 길을 복기한다면 통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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