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소설가 윤후명 “노인 자살, 글쓰기 교육 받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요”
시인이자 소설가 윤후명 “노인 자살, 글쓰기 교육 받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6.23 13:37
  • 호수 5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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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일반인 대상으로 소설 창작 가르쳐와… 개인적으론 드문 일
등단 50주년 시집 ‘강릉별빛’ 펴내… 반세기 천착한 주제 ‘인간 본질’

 

“70세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윤후명(71)씨가 ‘놀랍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윤씨는 “올해 지방의 한 신문사가 주최한 신춘문예에 일흔 여성이 당선됐다”며 “2006년인가 60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가 나오자 조선일보는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톱기사로 다루며 제목을 ‘60 잔치가 시작됐다’고 썼다”고 말했다. 두 당선자 모두 윤씨에게서 소설 창작을 배운 제자들이다.
6월 말, 서울 서촌에 위치한 윤씨의 작업실에서 만나 반세기 동안 인간의 본질을 주제로 글을 써온 이유, 글쓰기와 노인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었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급 노령화’는 무얼 뜻하는 걸까.
“박완서 선생이 40세 문단에 나온 걸 두고 ‘늦깎이 데뷔’라며 화제가 됐고 그 기록이 한참동안 깨지지 않은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사회학자가 이런 사회 현상을 연구하면 뭔가 나올 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인간수명이 길어졌다는 얘기인가.
“그렇지요.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활동도 오래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윤씨는 작업실에서 한 달에 두 번 일반인을 상대로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국민대 대학원에서 20여년간 소설 창작을 가르쳤던 윤씨는 그와는 별도로 1988년부터 이런 강습을 해왔다. 윤씨는 “개인이 30년간 소설을 가르친 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이 소설을 배우러 오는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해요. 5년 전부터 60 넘은 이들이 많아지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소설 창작에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나.
“없어요. 뭐든지 쓰는 겁니다. 단편소설을 써 여러 사람 앞에서 그 내용을 발표하게 한 다음 다 같이 토론을 하고 마지막으로 제가 얘기를 해줍니다.”
-그동안 몇 명이나 당선시켰는지.
“60명을 넘어선 이후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돼 세보지 않았어요.”
-당선 비결이라면.
“딱 한 가지 비결이라는 건 없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있었지요. 신춘문예 소설에 맞게 써야 한다는… 가령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 당선될 여지가 컸지요.”
-그와 반대되는 소설은 당선되기 힘들었겠다.
“어떤 이는 그런 걸 싫어해요. 사회 기류에 맞추기 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저 역시 그렇지만 그게 더 좋은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신춘문예에) 떨어지기 좋지요.”
-노인들은 소설을 배우면서 뭐라고 하나.
“아주 좋아 합니다. 어떤 이는 ‘이제 사는 것 같다’는 말도 해요. 돈벌이는 아니라는 거지요.”
-노인 자살률이 높다. 노인이 글을 쓰면 이 문제도 해결 될까.
“그럼요. 글쓰기의 핵심은 ‘나는 무어며,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글쓰기 교육이 없었어요. 저는 자살과 글쓰기가 서로 연관됐다고 봅니다. 글쓰기를 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발달해도 노인자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제 시작했다고 보는데 앞으로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겠어요.”
-하버드대 등 외국의 유명대학들은 글쓰기 교육을 중시한다.
“글이라는 게 글자 공부가 아니에요. 갑골문자, 쐐기문자 시대에 물고기 몇 마리 잡아 오라고 하는 게 다 약속입니다. 이 약속들이 쌓여서 문화가 됐어요. 다른 분야는 이런 게 없어요. 글은 인문학이고 인류학입니다. 글에 의해 지금의 우리가 됐어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걸 하지 않았어요.”
-나이 듦에 대해서는.
“저는 좋아요. 원숙해지고 창작에도 좋아요.”

윤씨는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나왔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각각 당선됐다. 이후 소설과 시, 수필, 동화 등을 써왔다. 대표작은 소설집 ‘둔황의 사랑’‧‘모든 별은 음악소리를 낸다’‧‘새의 말을 듣다’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명궁’‧‘홀로 가는 사람’‧‘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동리문학상 등 수상. 국민대 대학원 겸임교수와 체코 브로노 콘서바토리 교수를 거쳐 현재 ‘문학비단길’ 고문으로 있다.
-등단 50년의 소감은.
“어렸을 적에 이렇게 오래 살 줄 상상이나 했나요. 저로서는 정리할 기간을 주었다는 점에서 아주 좋아요. 60대는 정리할 시간이 없어요.”
-50년간 추구해온 주제는.
“저는 현실적인 주제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추구했어요. 자아의 탐구, 제가 철학과를 나와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게 성향에 맞는 것 같아요.”
-인간의 본질은 무언가.
“인간마다 다를 겁니다. 가령 자아는 있는 게 아니고 쓰는 만큼 자아가 생기는 겁니다.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가 자살하면서 ‘자기를 다 표현해서 간다’는 말을 했지만 저는 그 말에 승복을 못해요. 사르트르는 ‘단지 씀으로써 무엇이 된다’고 했어요. 쓰는 순간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진다는 얘기지요.”
-과거엔 작가들이 요절도 하고 그랬다.
“과거 우리나라엔 30대에 예술원 회원이 되기도 했어요. 이후에는 누리기만 한 거예요. 외국은 그렇지 않아요. 노벨상 수상작가가 죽기 직전까지 글을 씁니다. 돈, 명예 다 가진 이도 글을 써요.”
-어떻게 작가가 됐나.
“17세 때(용산고 재학) 성균관대 백일장에서 시 부문 장원을 했어요. 그때부터 시를 썼어요. ‘후명’이라는 이름도 하나 만들었고요(본명은 상규). 두터운 빛이 쌓인다는 의미에요.”
-시도 쓰고 소설도 쓴다.
“우리는 선비의식 같은 게 있어서인지 시나 소설 중 한우물만 파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아요. 유명한 릴케도 시, 소설 다 썼어요.”
-동시에 하기는 힘들 텐데.
“같이 쓰면 못써요 길항작용을 해 서로 자기 정신 속에서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하나를 싹 버리고 다른 걸 하면 서로 안 싸워요. 저를 뽑아준 이어령 선생이 저에게 ‘앞으로 20년 동안은 시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한 말을 그대로 듣고 시인들도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정말 20년 만에 우연히 한 문학잡지 편집장의 시 청탁을 계기로 다시 시를 쓰게 됐지요.”
-영향을 준 외국작가는.
“일본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국은 윌리엄 포크너.”
-그림 전시회도 세 차례나 했다.
“1990년에 야생화 붐이 일었어요. 10년간 꽃을 쫓아다녀 책을 냈는데 그게 많이 팔렸습니다. 당시 책엔 글만 들어있어요. 다시 책을 낼 때는 내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윤씨의 그림에는 새와 엉겅퀴가 많이 보인다. 서민적이고 흐트러진 맛이 있어서 엉겅퀴를 자주 그린다. 윤씨는 50주년 등단을 맞아 시집 ‘강릉별빛’(서정시학)을 펴냈다. 앞으로는 고향인 강릉에서 자신이 해왔던 어떤 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들을 자아탐구와 합치시켜 무엇인가를 만들어볼까 궁리 중이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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