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야 할 ‘노인 비하’
사라져야 할 ‘노인 비하’
  •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7.06.30 13:22
  • 호수 5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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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씨는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덤벼들면 답이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노인비하’니 이런 얘기를 꺼내면 같은 맥락에서 평가될까봐 조심스럽긴 한데 한 번은 짚어보고 싶어 입을 열어 볼까 한다.
나는 주말저녁 개그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즐거운 주말 일상이다. 오죽하면 끝나는 시그널이 나올 때 제일 슬프기도 하다. ‘아 이제 즐거운 주말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최근 이 프로그램에 노인정의 서열과 권력 잡기 모습을 보여주는 코너가 새로 생겼다. 내용인즉, 1939년생 노인이 신입회원으로 들어온다.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던 선배들의 입장에선 까마득한 어린 것에 불과하다. 묻는 말에 대답하면 “아직도 들리네”, 눈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신입이 따지면 “아직도 보이네”,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면 “아직도 씹네”라고 말한다. 움직이지도 못해 의자 신세를 지고 있는 또 다른 실력자는 말로만 허세를 부릴 뿐 아무 힘이 없다.
정신건강을 위해 코미디 프로는 따지지 말고 무조건 웃고 보자 주의인 나이지만, 가만히 듣다보니 그냥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노인이 저렇게만 보일까?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소리만 크고 허세만 부리는 사람들? 빨리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인데 아직까지 있는 존재? 분장은 꼭 저렇게 지저분하게 해야 할까? 가발을 쓴 머리도 지저분하고 입고 있는 한복도 매무새가 단정하지 못하다.
아무리 희화이고, 노인문제에 대해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당사자들이 느끼기에 부정적이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조롱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느낌일 수 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 댓글엔 노인을 비하하고 귀찮아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벌레충(蟲) 자를 붙여 노인충이라 칭하며, 무임승차하는 노인 때문에 더 지옥철이라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다. 일자리 없고 살기 어려운 자신의 원인이 노인이라고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정치하는 사람들의 노인비하 발언은 잊을만하면 튀어나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지난 대선에서 한 후보가 자신의 장인을 ‘영감탱이’라 말하여 큰 논란이 됐다. 경상도 출신인 그 후보는 장인을 친근하게 표현할 때 쓰는 그 지역의 말일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미 대중들은 “비하하는 말이다”, “패륜이다”라며 화살을 보냈다.
스스로 젊은이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노인들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한다. “출마하지 마라”, “투표하지 마라”, “자녀들은 부모님들 투표 못 하게 온천장으로 여행 보내드려 효도를 해라” 등등.
한 때 대선주자로도 나섰던 국회의원 J씨. 당시 당 의장으로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60~70대는 투표를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투표일에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해 노인들의 공분을 샀다. 촉망받는 대선 후보였으나, 이후 웬만해선 정치적 호감도가 회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써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논객인 전 국회의원 Y씨는 지난 2004년 대학 특강에서 “20년 뒤에 나에게 ‘저 노인네 언제 고려장 보내나’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 60대 이후엔 가능한, 65세 부터는 절대로 책임 있는 자리엔 가지 않겠다”고 단언을 했다. 그 분도 2년 후면 환갑이다.
2014년 S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79세의 피감자를 몰아붙였다. “그 나이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시려고 하느냐, 쉬는 게 상식이다. 한국에서 정년은 60세를 전후로 하고 있고 정년이란 제도를 둔 것은 판단력이 떨어져 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기대선이 있었던 올해도 P 의원은 선출직 공무원에게 65세 정년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65세 이상은 활력이 없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피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이 말은 노인 비하 정도가 아니라 비하를 넘어선 막말이라는 반발이 있었다. 노인들이 시위를 하지 못하게 시청역 엘리베이터를 없애버리자고 말한 K 씨도 있다.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70대 후반까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나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도 80대 고령에도 존경받으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에 가까워지고 있다. 0~14세 아동인구를 추월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45년에는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1800만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35.6%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얘기가 길어졌다. 나이 들면 입을 닫고 귀만 열라고 했는데,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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