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들의 아침식탁 후일담
재벌 회장들의 아침식탁 후일담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6.30 13:25
  • 호수 57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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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 잡지에 연재물을 쓴 적이 있다. 연재물 제목이 ‘명사의 아침식탁’이었다. 사회저명인사들은 과연 아침에 무얼 먹을까. 국무총리, 국회의장, 재벌그룹 회장들의 아침밥상을 독자들에게 공개하자는 것이다. 국민 정서상 아침부터 남의 집 식탁을 들여다보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일상적인 인터뷰도 거부하는 판에 밥상까지 공개해야할 판이니 담당자로선 죽을 맛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1915~ 2001)의 밥상을 촬영하기 위해 당시 비원 앞에 있던 현대그룹 홍보실에 전화를 넣었다. 현재 이병규 문화일보 회장이 당시 ‘왕회장’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예상대로 비서실장의 대답은 ‘노’였다. 기자는 다음날부터 아침 출근을 회사 대신 정주영 회장이 살던 청운동 자택으로 정했다.
며칠 만에 대문 앞에서 등산화를 신은 정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아침마다 자택 뒤 북악산을 산책했다. 신분과 사정을 밝히자 정 회장은 망설이지 않고 취재를 허락해주었다. 정 회장의 아침식탁엔 순두부가 빠지는 날이 없었다. 부인 변중석 여사가 커다란 ‘갈색다라’에 동해에서 길어온 바닷물을 넣어 순두부를 직접 만들었다. 정 회장은 평소에 “건강 비결이라면 순두부”라고 말하곤 했다.
그 무렵 대우그룹의 사세는 하늘로 뻗칠 정도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김우중(81)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 시사하듯 사석에서 그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주영 회장을 공략하던 방식을 택했다. 새벽에 방배동 그의 집 앞에서 그가 나오기를 무작정 기다렸다. 신정이었다. 아침 7시 조금 넘은 시각, 대문이 열리고 오펠 마크를 단 외제승용차가 집안에서 스르륵 굴러 나왔다. 그 차는 독일의 오펠 사 차량으로 대우자동차의 신차개발 연구용이었다. 기자는 잽싸게 몸으로 승용차를 막아 세웠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비서가 황당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용건을 물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며칠 후 대우그룹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대우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기자가 김 회장의 아침 밥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의 아침은 부인 정희자 씨가 손수 차렸다. 정씨는 당시 힐튼호텔을 운영하는 동우개발 회장이었다. 가정주부와 호텔 CEO, 두 가지 일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김 회장은 2남1녀의 자녀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말없이 떡국을 먹었다.
김 회장은 숟갈로 떠먹는 게 아니라 들이마신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셨고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그릇에서 얼굴을 들지 않았다. 당시 대우그룹 임원들은 회식자리에서 김 회장의 빠른 식사 속도 때문에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하소연 할 정도였다.
연재물에서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도 비켜갈 수 없었다. 신 회장은 연재물 전부터 만나려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접촉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무렵 신 회장은 37세 연하의 서미경씨를 첩으로 두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최근 상속 재산 문제로 서씨가 언론에 노출됐지만 당시엔 ‘실종’ 상태였다.
그 일과 관련해서도 신 회장을 만나고 싶었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가 45년간 마을잔치를 치러왔다는 미담과 관련해서다.
신 회장은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났다. 1970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자 이듬해인 1971년부터 매년 5월 초 흩어진 주민들을 한데 모아 마을잔치를 벌여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 신격호 회장이 롯데그룹 경영에서 손을 뗐다는 소식을 들었다. 롯데 창업 70년만의 일이다. 신 회장은 자식들의 경영권 싸움에 휘말려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불려 다니는 수모까지 당했다. 껌 하나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위대한 ‘롯데제국’을 건설한 세계적인 경영자의 말로치고는 너무나 비참했다.
경영학의 천재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영웅인 최고경영자가 치러야할 마지막 시험은 얼마나 후계자를 잘 선택하는가와 그의 후계자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가”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그런 점에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그의 퇴장을 바라보는 기자로서 ‘아침식탁’을 찍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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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자 2017-07-03 14:17:47
음식도 중요하지만 기본체력 건강이 우선이다.
체력이 약하면 산삼을 먹어도 소용없고,인삼녹용도 무용지물이다.
출생때, 우선 건강한 채력을 타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