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古 금속활자 ‘직지’ 미스터리 풀다
最古 금속활자 ‘직지’ 미스터리 풀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6.30 14:54
  • 호수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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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직지코드’

고려가 서양에 금속활자 전했다는 가설 흥미진진

역사학자 박병선(1929~2011) 박사. 그는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보라는 스승의 권유를 받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박 박사는 국립도서관을 비롯,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 고서점 등을 찾아다녔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외규장각 의궤를 찾은 것은 물론이고 뜻밖의 수확도 거뒀다. 세계 인쇄사의 흐름을 단번에 뒤집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을 발견한 것이다.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학자들이 구텐베르크의 활자를 최고(最古)로 여기고 있다.
이런 ‘직지’에 얽힌 역사적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개봉했다. 6월 28일 개봉한 ‘직지코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5개 국가를 돌며 3년간 이어진 촬영 끝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작품은 세계적인 잡지 ‘라이프’ (LIFE)가 선정한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 1위’로 꼽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 고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논쟁의 중심에 오르기도 한 이 가설은 제작진의 탄탄한 취재력과 끈질긴 열정이 뒷받침 되면서 점차 신빙성을 더해간다.
과정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직지’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은 연구 목적으로 사전 허가를 받은 일부 관람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락, 제작진의 취재 요청을 수차례 거부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모든 촬영을 마친 제작진이 힘든 여정의 마무리를 자축하는 사이 촬영분을 모두 도난당하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지 경찰관들조차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자 결국 제작진은 한층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촬영에 돌입한다.
박병선 박사의 경우처럼 노력은 제작진을 배반하지 않았다. 끈질긴 추적 과정은 ‘직지’를 둘러싼 은밀한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극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과 희열을 선사한다.
노력 끝에 제작진은 새로운 역사이자 가설을 입증하는 데 큰 역할을 할 편지를 찾아낸다. 1333년 교황이 고려의 왕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한 것이다. 해당 편지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1455년 이전의 것으로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왕이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해줘서 기쁘다’는 내용의 편지는, 한국에 온 최초의 유럽인이 1594년 세스페데스 신부로 기록돼 있는 천주교 역사를 뒤집는 놀라운 발견이자 고려와 유럽 금속활자 역사 사이의 비밀을 풀어줄 연결고리인 셈이다.
작품은 무엇보다 이 과정을 감독이자 서양인인 데이비드 레드먼을 주축으로 진행해 객관성을 확보한다. 기존의 감성적인 추측이나 다른 자료에서 정리했던 내용을 답습하거나 재정리한 게 아닌 직접 ‘직지’의 행방을 쫓아 입체적인 취재를 감행한 것도 신뢰도를 높였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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