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단추 장식으로 보는 문화의 변화상
프랑스 단추 장식으로 보는 문화의 변화상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6.30 14:55
  • 호수 5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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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전
▲ 전시에서는 기능적 역할로 시작해 점차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은 단추의 변천사를 통해 프랑스 문화의 변화상을 살펴본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다양한 단추들.

佛 장식예술박물관 소장 18~20세기 의복·회화·공예 1800여건 전시
기능적인 물건서 시작해 옷의 핵심 장식으로 변하는 과정 한눈에

옷을 여미거나 푸는 것을 쉽게 하려고 기능‧장식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단추라 부른다. BC 6000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 두 개의 옷자락을 뼈·금속핀 등으로 끼우는 형태에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기능적 필요로 시작됐지만 단추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시대와 문화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대표하는 액세서리로 자리를 잡게 됐다. 단추 하나만 들여다봐도 인류가 걸어온 길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는 8월 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는 이러한 단추에 담긴 문화 이야기를 제대로 엿볼 수 있다.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과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단추를 중심으로 의복, 회화, 판화, 서적, 사진, 공예 등 1800여 개의 전시품을 선보인다.
장식예술박물관이 이번에 내놓은 소장품은 모두 한 사람이 수집했다. 평생에 걸쳐 3000여 개의 단추를 수집한 로익 알리오(66)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수집한 단추들은 프랑스 국립문화재심의위원회를 거쳐 2011년 프랑스의 중요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엄마에게 받은 첫 단추 덕에 단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알리오의 별명은 ‘단추 선생’이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패션 역사상 단추에도 황금기가 있었다. 18세기 말이 단추의 첫 번째 황금기였고, 오트 쿠튀르(고급여성복)가 출현한 19세기 말에서 1940년대까지를 제2의 황금기로 봤다.
전시에서는 프롤로그, 1~3부, 에필로그로 구성해 단추의 변화된 위상을 소개한다. 먼저 프롤로그 ‘이미지로 본 프랑스 근현대 복식’에선 18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유화, 판화, 포스터, 사진으로 프랑스 복식의 흐름을 살펴본다. 이번에 선보이는 회화 작품들은 서양의 복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관객을 위해 특별히 구성한 부분이다. 또 ‘소재와 기법’의 테마를 별도로 제시하여, 단추의 다양한 재료와 기법에 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 전시의 1부에서는 단추를 통해 절대 왕정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18세기의 프랑스 역사와 문화를 조망한다. 16~17세기까지만 해도 귀족들은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경쟁적으로 단추를 주문 제작했고, 이로 인해 국가에선 사치품이 된 단추를 겨냥해 사치 금지령까지 내렸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왕정에서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인 18세기에 들면서 귀족에서부터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단추의 사용자가 다양해졌다. 귀족처럼 진짜 보석 단추를 만들지 못했지만, 인조보석 단추를 만들어 상류층 문화를 느껴보려는 사람들도 이 시기에 생겨났다. 세밀한 스케치를 담은 것부터 곤충의 표본을 넣은 것, 프랑스 혁명의 신념을 적은 것 등 폭넓어진 단추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산업화와 제국주의라는 격변의 세기를 맞이한 19세기 프랑스를 단추와 복식으로 살펴본다. 19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다. 새로운 부를 쌓은 부르주아가 생겨났고 덩달아 여성들의 의복도 눈에 띄게 화려해졌다. 지름이 3m가 넘는 거대한 크리놀린(스커트를 부풀려 주는 속치마) 드레스가 유행하면서 단추도 실용성을 넘어 장식용으로 사용됐다.
또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여성복에서 단추의 위치는 뒤(등)에서 앞(가슴)으로 이동하는데 이는 여성 스스로 옷을 입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권 신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단추를 만드는 곳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길드 내 장인이 수공예로 단추를 만들었다면 19세기 이후부터 공장에서 단추를 대량생산 하기 시작했다. 전시된 당시 옷과 단추 견본품의 모습이 흥미롭다. 기계화에 대한 반발로 인간 및 자연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아르누보 운동도 시작됐는데 이러한 경향 역시 단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20세기 전반기까지의 프랑스 복식의 흐름을 시기별로 살펴본다. 이 시기에 단추는 의상 디자인의 핵심 요소이자, 예술가들의 내면을 반영한 중요한 표현 매체가 됐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단추를 매력적인 소재로 여기면서 미술작품에 버금가는 단추를 만들어 냈다. 이는 곧 단추가 한 시대의 스타일과 예술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최초의 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의상과 단추를 비롯해 코코 샤넬이 유일하게 경쟁상대로 생각했다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의상과 작품 단추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스키아파렐리의 왕국에서는 단추가 왕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상 디자인에서 단추를 중요하게 여겼다. 커다란 나비 모양이나 돌에 금속을 입히는 등 그의 의상 속 단추들은 기능성을 넘어 디자인의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서울 전시에 이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9월 9일부터 12월 3일까지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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