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근 전 전북지사 “한국 경제성장률 다시 올리려면 고통스런 개혁 불가피”
유종근 전 전북지사 “한국 경제성장률 다시 올리려면 고통스런 개혁 불가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7.07 11:33
  • 호수 5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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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 미국서 경제학 교수… DJ 대통령 당선, 외환위기 극복 등에 기여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 느껴… “장로 돼 신앙 간증 다니는 삶 행복해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과외 선생, 대선 도전까지 시도했던 전북도지사. 그런가 하면 미국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한국공연을 유치해 화제가 된 인물. 유종근(74)씨 얘기다. 한 동안 세인의 눈에 띄지 않다가 최근 서울 가양동의 자그마한 개척교회에 모습을 보였다. 그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었고 그의 입에선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지난 7월 초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만나 화려했던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하나님을 가까이 했던 순간들을 들었다.

-사무실 문에 ‘한국경제사회연구소’란 입간판이 보인다.
“여기는 제가 운영하는 사단법인이에요. 경제 관련 세미나도 하고 개인적으로 책도 쓰고 하는 공간입니다. 사무실이 또 하나 있어요. 근처 국민일보 건물에 제가 몸담고 있는 다문화tvM(올레TV 채널 283)이 있어요.”
-다문화TV는 어떤 방송인가.
“다문화인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해소하고 도와주는 일을 해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우리 프로를 볼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 걸 줄여주는 일도 해요.”

유 전 지사는 미국에서 24년을 지냈다. 그 중 21년간 교수였다. 주변이 지식인층이었지만 유 전 지사 역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회장이 됐다고 한다.
-어떤 계기로 장로가 됐나.
“세번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하겠다며 저를 찾아와 옆에서 도와준 적이 있어요. 평신도 대표로 목사님을 모시고 다니며 통역에서부터 반주, 성가대 모집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갔지요.”

두 번째는 전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이다. 이상할 정도로 당선될 것이란 신념이 들었다. 유 전 지사는 “상대는 3선 국회의원에다가 당에서 밀어주고 그에 비해 저는 미국에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데다 정치적 기반조차 없었다”면서도 “하나님이 저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전쟁과도 같은 치열한 선거를 치른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정치적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였다. 첫날 취침기도를 하려는 순간 저절로 입에서 기도가 흘러 나왔다. 내용은 이랬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지만 3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나는 뇌물을 받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를 많이 지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적당한 때에 내보내주실 거라고 믿고 기다리겠다”. 유 전 지사는 “운동하고 성경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3년 9개월을 형무소에서 보냈다”며 웃었다.

-전북도지사로서 업적이라면.
“당시 법과 규제로 불가능하게 돼 있는 외자유치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외국돈 들여오면 매국노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었지만 저로 인해 그런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우리나라가 IMF 당한 것도 달러가 없어서였잖아요.”

▲ 유종근 전 지사가 최근 서울 가양동의 한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유 전 지사는 문화시설에도 흔적을 남겼다. 전주에 있는 ‘소리문화의전당’ 음향시설이 완벽해 세계 유명 연주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유 전 지사가 세계적인 공연장 카네기홀을 벤치마킹해 지은 것이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노래하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잘 해 놨다고 칭찬한다”고 말했다.
유종근 전 지사는 전북 정읍 출신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80달러였을 시절,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한국에 돌아와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73년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979~1990년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학 교수를 지냈다. 뉴저지 주립대학 교수의 소개로 뉴저지 주지사 수석경제자문관을 10여년 했다. 1991년 한국에 돌아와 민주당 홍보위원장, 아태재단 사무부총장을 지냈다. 1995년 초대 민선 전북도지사에 당선됐다. 1998~2000년 김대중 대통령 경제고문을 지냈다. 2002년 대선 경선 참여 선언 직후 뇌물수수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현재 다문화TV 회장으로 있다.
‘유종근이 말하는 경제돌파구’(청어․2017) 외 14권의 저서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갔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2010년에 장로 추천을 받았다.

-DJ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그분이 1980년대 미국에 들렀을 때 저에게 경제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햇볕정책’이란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1994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때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느냐 마느냐 할 때였어요. 이걸 막기 위해 당시 워싱턴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DJ가 연설을 했어요. 연설문을 제가 영어로 정리해드리면서 제목을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나에게서 햇볕을 가져가지 마세요)란 영어 노래의 후렴을 이용해 달았어요. 그 후부터 DJ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이 된 겁니다.”
-경제학자로서 업적이라면
“외환위기 때 미국에서 G7을 통해 100억 달러 추가지원을 해주지 않았으면 위기 극복이 힘들었을 겁니다. 그에 앞서 미국 재무차관이 DJ의 구조조정 의지 여부에 대해 시험을 보러 오기로 했는데 DJ가 고분고분하지 않았어요. 아침 일찍 동교동 댁으로 방문해 식탁에서 2시간 언쟁을 벌였어요. 결국 DJ가 이해를 해주었고 제 뜻을 받아들인 결과 추가 지원을 받았지요. 대통령 선거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였던 DJ로 하여금 국제 금융계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해 당선에 결정적 도움을 준 것도 인정받을 만합니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나.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저조하다가 작년 말, 금년 초 들어 회복기에 들어갔어요. 한국도 수출도 호조고 경제가 그런대로 현상유지는 해가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성장률에 비해 점차 떨어져요.”
-방법은?
“고통스런 개혁을 해야 합니다. 노동개혁을 해야 하고 규제를 바꿔야 합니다. 모든 개혁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따라요. 현재의 제도 하에서 이익을 보는 이들이 자기들의 이익이 없어진다고 반대하는 거지요. 이 제도를 개혁함으로 인해서 혜택을 받을 사람은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몰라요. 그래서 반대는 강하고 찬성은 없어요. 그래서 개혁이 어려운 겁니다.”
-경제학자로서 노인의 재테크라면.
“재테크 함부로 하면 전문가에게 당합니다. 착실하게 은행에 넣어두세요. 부동산 좋다는 것도 과거 얘기에요. 안전이 최상이에요. 전 평생에 주식하지 않았어요.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 길게 보면 한 사람도 없어요.”
-경제적으로는 성공했나.
“저는 못했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여러 가지 재주를 주셨지만 돈 버는 재주는 안 주셨어요. 경제학 하는 사람은 돈 못 벌어요. 경제는 나라 전체를 잘 살게 하는 겁니다. 기업 경영 잘 하는 사람 대통령 뽑으면 잘 살 것 같지요. 미국에서 다 실패했어요.”
-100세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참 중요한 말이에요. 우리 또래는 이런 시대가 올 줄 몰라 그에 대한 준비를 안 했어요. 세컨드커리어를 쌓아야 하지만 가급적이면 경제활동하고 연관되는 걸 하는 게 좋아요. 돈이 없으면 가족에게도 대접을 못 받으니까요. 새로운 시대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발굴해야 합니다. 여유가 되면 봉사활동하고요. 제 경우는 연구 활동하고 1년에 책 한두 권씩 써내고 교회에서 봉사합니다. 그런 삶이 행복합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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