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위선 벗겨낸 블랙코미디
중산층의 위선 벗겨낸 블랙코미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7.07 13:50
  • 호수 5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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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과정 실감나게 그려

대학살의 신. 제목만 놓고 보면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이나 신들의 갈등이 떠오르지만 실상은 중산층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성적인 변호사 ‘알렝’, 단정하고 우아한 가정주부 ‘아네뜨’와 평화주의자 도매상 ‘미셸’, 그의 아내이자 교양과 인류애가 넘치는 아마추어 작가 ‘베로니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만남은 지적으로 시작하지만 결과는 몸싸움으로 마무리된다. 이들 부부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이었을까.
1세대 뮤지컬 스타 남경주, 최경원 그리고 삼둥이 ‘대한‧민국‧만세’의 아빠로 유명한 배우 송일국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연극 ‘대학살의 신’이 오는 7월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57)가 쓴 블랙코미디극으로 2009년 세계적 권위의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을 동시 석권했고 영화계 거장 로만 폴란스키가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극은 네 사람이 한 집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두 부부가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식들의 싸움 때문. 11세의 동급생인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치고받았고 결국 한 아이의 앞니가 완전히 부러졌다. 앞니가 부러진 소년의 부모 베로니끄와 미셸은 아들의 앞니가 부러졌음에도 고상한 말투와 교양 있는 태도로 상대 부모와 대화를 나눈다. 앞니를 부러뜨린 소년의 부모인 아네뜨와 알렝 역시 금슬 좋은 부부인 척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이도 잠시,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숨겼던 네 사람은 곧 발톱을 드러낸다. 자신의 주장이 상대에게 먹히지 않자 차츰 말을 놓더니 곧 이어 인신공격을 하고, 교묘하게 상대를 깎아내린다. 가해자 부모 대 피해자 부모의 다툼은 시간이 흐르면서 부부 대 부부, 남편 대 아내의 싸움으로 변질된다. 각자의 위선과 가식이 걷혀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마침내 온몸을 날리는 육탄전을 벌인다. 극 중 ‘대학살의 신’은 어린아이에게 사람을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아프리카의 문화를 의미하는 단어지만 품위를 지키며 시작된 대화가 결국 교양의 ‘대학살’로 막을 내린 것이다.
작품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위선이 어떻게 폭로되는지를 코믹하지만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시시각각 변하는 네 인물의 관계와 대화는 한 시간 반이라는 공연 시간 내내 지루할 틈이 없게 한다. 특히 가정의 평화를 위해 늘 숨죽이고 살았던 아네트가 분노가 극에 달하자 숨겨온 진짜 모습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우리 아들이 당신 아들 때린 거 아주 잘 한 거다. 인간의 의무니 원칙이니 이따위 것들 다 개소리야.”
인간의 위선을 철저히 까발리며 관객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건 결국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 때문에 가능했다. 배우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통해 본심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재치 있게 표현해내며 극의 재미를 극대화시켰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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