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등장에 어르신들 “우린 어쩌라고…”
키오스크 등장에 어르신들 “우린 어쩌라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7.07 14:03
  • 호수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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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푸드업체를 비롯한 서비스업계가 경비절감과 매출증대를 위해 무인결제기를 도입하면서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를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 사진은 무인결제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패스트푸드‧은행 등 경비절감‧매출증대 위해 무인시스템 도입
9번 이상 터치해야 주문 가능… 디지털 서툰 노인들 상대적 차별

지난 7월 3일 서울 종로구 A패스트푸드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한 노인이 무인계산기 앞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려고 들어섰지만 5분 넘게 기계만 만지작거렸고 보다 못한 한 청년이 도움을 줘 가까스로 결제했다. 비슷한 시간 인근 B패스트푸드점의 상황도 마찬가지. 친구들과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들른 김정희(72) 어르신이 무인결제기 앞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역시나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음료수를 손에 쥔 김 어르신은 “커피 한잔 마시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해 은행, 약국 등 서비스업계가 잇달아 무인결제기를 도입하면서 이에 대한 활용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해당 업종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아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무인결제기(키오스크)는 ‘신문, 음료 등을 파는 매점’이란 뜻으로 무인화·자동화를 통해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자동화 시스템·기기를 통칭한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고 일처리 속도를 높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이미 무인결제기가 보편화됐다. 롯데리아는 2014년 4월부터 무인결제기를 도입해 현재 1300여개 매장 중 460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맥도날드 역시 2015년부터 무인계산대를 들여왔고 연내 250개까지 운영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6년 처음 도입한 버거킹도 계속 설치를 늘려갈 예정이다. 모바일의 발전으로 오프라인 창구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은행들도 무인결제기 도입에 적극적이다. 신한·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은 2015년 말 3924곳에서 2017년 3월 3686곳으로 1년 반 새 238개의 점포를 줄인 대신 이 자리를 무인점포들로 채우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무인결제기의 편리함을 강조한다. 점심시간 등 바쁜 시간대에 기존 계산대와 병행해서 운영할 경우 분산효과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런 무인결제기의 장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장애인‧장노년층‧저소득층‧농어민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무선 정보통신환경에서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58.6%에 그쳤다. 특히 70대 이상의 경우 28.7%로 심각한 정보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70대 이상 노인의 경우 무인결제기 같은 장비를 보통의 젊은 사람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이 10명 중 3명도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종로 지역 2개 점포에서 만난 노인들은 대부분 불편을 호소했다.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결제기는 최소 9번의 터치를 거쳐야 결제 화면으로 넘어간다. 첫 페이지에 표시되지 않은 메뉴를 고르거나 선택 실수라도 하면 터치 횟수는 배로 늘어난다. 사용방법에 대한 가이드와 도우미도 따로 배치하지 않아 디지털 장비에 익숙한 사람들도 처음 하는 경우 잦은 실수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의 비해 인지능력과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의 경우는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는 점이다. 노안으로 인해 화면의 글씨도 잘 안 보이는데다가 바쁜 시간일 경우 뒷사람의 눈초리를 받기 때문에 주문에 대한 부담감도 커진다.
곽도환(67) 씨는 “계산대에서 시킬 때는 원하는 걸 말하고 돈만 지불하면 됐는데 무인결제기는 너무 불편하다”면서 “정착될 때까지 도우미라도 배치해 사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노년층의 불편을 감안해 노인 고객에 대해선 대면 주문을 받고 무인결제기의 직원 호출기능을 소개해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직원이 사용법을 안내해주고 있다. 고객 이용률이 낮은 시간대에 무인결제기 이용을 권하지만 대면 주문을 아예 안 받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무인결제기로 서비스업무를 대체하는 기업들이 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비용 절감’에만 몰두해 사용 편의성 기술 개발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보다 쉽게 이용할 있게 화면을 단순하게 꾸민 무인결제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노인들의 디지털 교육 등 필요한 조치가 병행되지 않은 채 무인결제기를 늘려나가면 정보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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