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그게 뭣이 중헌디”
“피부색, 그게 뭣이 중헌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7.21 11:37
  • 호수 5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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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과 파랑색을 적절히 배합한 전신 ‘쫄쫄이’를 착용한 ‘거미인간’ 피터 파커의 이야기를 그린 ‘스파이더맨’의 신작이 개봉과 동시에 국내에서만 7월 19일 현재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생소하겠지만 국내에선 수십만명의 팬층을 확보한 캐릭터로 영웅 캐릭터 인기투표에서 배트맨, 슈퍼맨 등과 함께 1위를 다툴 정도이다.
이번 작품은 역대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여주인공이 흑인으로 바뀐 것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스파이더맨에겐 두 명의 여자친구가 있다. MJ라 불리는 ‘메리 제인’과 경찰청장의 딸인 ‘그웬 스테이시’가 그들인데 원작에서는 둘 다 백인이다. 하지만 이번 신작에서 스파이더맨이 흠모하는 여성과 향후 MJ로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미셀’이라는 캐릭터가 모두 흑인으로 바뀌었다. ‘화이트워싱’에 빗대 ‘블랙워싱’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화이트워싱 (Whitewashing)은 백인이 아닌 캐릭터인데도 백색 인종 배우로 캐스팅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한때 할리우드는 백인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주요 배역을 죄다 백인들이 차지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슈퍼스타는 거의 백인이었고 타인종은 조연으로 연명하는 정도였다. 2000년대 들면서 이런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랑받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백인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할리우드발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은 백인들이 압도적이고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다.
겉으로 보면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운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역시도 민족주의에 매몰돼 있다.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한때는 학교 교육에서 단일민족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중국‧일본 등과 교류를 통해서 이미 상당히 피가 섞였음에도 ‘단일민족’이란 용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이런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권고할 정도로 말이다.
한국도 다문화가정이란 말이 등장했을 정도로 수많은 민족이 동고동락하고 있다. 다만 영화와 드라마는 이를 담지 않는다. 간혹 외국인노동자와 외국인며느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여전히 주요 등장인물들은 죄다 한국인이다. 어느 동네를 가든 외국인 또는 혼혈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이 역시 다른 의미의 ‘화이트워싱’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왔다.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보다는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고충을 다루는 편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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