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실버 애플족 “자부심 갖고 즐긴다”
즐거운 실버 애플족 “자부심 갖고 즐긴다”
  • super
  • 승인 2006.08.25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임·의무 벗으면 이웃과 ‘인생 3막’ 시작

칠순의 피아니스트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바 있는 이강숙씨는 지난 4월 18일 9개의 중·단편을 실은 첫 소설집 「빈 병 교향곡」(민음사)을 펴냈다.

 

2001년 「현대문학」에 이 소설집의 표제작을 발표하며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한 이씨는 2004년에는 장편소설 「피아니스트」(현대문학)를 출간하기도 했다. 평생을 음악분야에 몸담아 온 이씨는 음악적인 소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천착해 갔다.


“표제작에는 호주의 음악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각자 구해온 빈 병으로 하나의 음을 만들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합주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고구마의 무덤」에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홍수」를 한 번만이라도 피아노로 직접 연주해 보려는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즉흥연주를 하는 사람들」에는 왜 음악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유년의 일화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씨는 칠순의 고령이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을 계획이다. 앞으로는 “‘글 그림’ 그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며 창작에 더 매진하겠다는 각오다.

 


유지윤·차정희씨 부부는 각각 일흔한 살, 예순 네 살이다. 젊은 시절 한의사와 교수로 재직해 온 이들 부부는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삶에 여유가 생긴 지금은 사회봉사활동 등을 하며 독립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유씨는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에서 인근 주민들에게 무료 한의학 건강강좌나 생활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건강지식들을 저만 알고 지내기엔 아까운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몸도 늙고 마음도 늙으면서 젊었을 때는 없었던 각종 질병들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보통 서너 가지의 약을 끼고 사는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약에서 벗어나 좀 더 활력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닿는 대로 노년층을 포함한 주민들에게 생활 속에서 지킬 수 있는 건강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또 유지윤·차정희씨 부부는 10여 년 전부터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들만의 노년을 즐기겠다는 계획을 세워 두고 의료사업과 교직생활을 하는 틈틈이 연금도 필요한 만큼 가입해 두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주거공간도 실버 레지던스로 옮길 계획이다.

 

그동안 현업에 쫓겨 정신없이 살았는데 노년에는 부부가 함께 손잡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못해본 정신적 사치를 누릴 계획이다.

오픈 마인드와 경험·지식 바탕으로 다양한 삶 연출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일흔 네 살의 선모씨는 요즘 취미생활을 이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듬뿍 빠져 있다.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선씨는 장년시절 시간이 나면 인사동이나 장안동 등을 뒤지며 고 물품들을 수집해 왔다.

 

조상의 손때가 묻은 생활용품들을 수집해 온 것이 양옥 2층을 가득 채울 만큼 되었다. 두 자녀도 출가를 하고 집에 빈 공간이 남자 아내와 상의, 2층의 방들을 개조해 작은 문화공간을 꾸밀 계획을 세워둔 것.


“우리의 전통과 멀어져 있는 동네 꼬마들이 와서 보고 조상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꼬마들이 ‘할아버지 이건 어디에 쓰이던 물건들이에요’ 질문을 하면 아는 만큼 대답해줄 용의도 있습니다.”


늙었다고 고립된 생활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적극적으로 세대 간 교류를 하며 보람되게, 즐겁게 살겠다는 것이다.


음대 기악과 출신으로 젊은 시절 피아노 과외 교습을 했던 송모씨는 막내딸을 출가시킨 후 인생 3막을 여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송씨의 인생 1막이 결혼 전의 미혼시절과 신혼시절이었다면 인생 2막은 자녀 출산 후 양육과 분가시키기까지의 시기. 3막은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는 시기로 잡았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의 사교육비에 보태고 노후대책을 세워두기 위해 과외 교습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매달 지출을 해야 할 큰돈이 없으니,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삼남매도 잘 크고 건강하게 각자의 가정을 꾸렸으니 신에게 받은 만큼 나보다 못한 이웃들을 위해서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자신의 생각에 적극 동참해 자신의 집은 연일 작은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며 송씨는 활짝 웃는다.

탄탄한 경제력 바탕, 고급문화 즐기는 애플족 부상


실버문화와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실버세대들은 늙으면 뒷방으로 물러 앉아 살아도 죽은 듯 조용히 숨을 쉬던 기존의 실버세대의 가치관과 문화를 거부하는 것.


특히 이들은 자녀들과 떨어져 독립생활을 지향하며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급문화를 즐긴다는 의미에서 ‘애플(APPLE)족’으로 불린다.

 

애플족이란 ‘활동적으로(Active) 자부심을 갖고(Pride) 안정적인(Peace) 고급문화(Luxury)를 즐기는 경제력(Economy) 있는 노인층’을 말한다.


이들은 ‘노인’ ‘황혼’ ‘은퇴자’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젊은 시절보다 오히려 더 즐겁고 활기찬 삶을 사는가 하면, 수십 년간 사회생활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한다.

 

장년시절부터 각종 연금에 가입하는 등 미래를 위한 설계도 충분히 해두었다. 자식들의 부양을 기다리며 부담을 주는 대신 노부부들만의 삶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진 실버 레지던스를 선택한다.


최근 분양 중인 서울 중구 정동에 경희대병원과 연계해 지하 3층~지상 13층에 57~90평형 94가구와 100~120평형 펜트하우스 4가구를 짓는 고급형 실버타운 ‘정동 상림원’에 노년층의 발길이 분주한 것도 새로운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애플족의 등장은 아직은 소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년층이 선진국 보다 많지 않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인 것은 사실.

 

애플족이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인생의 후반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애플족을 지향하는 노년층들이 늘어갈 것임은 분명한 추세다.


 장옥경 프리랜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