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면 노인 자살 줄어들까”
“나를 사랑하면 노인 자살 줄어들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7.28 10:49
  • 호수 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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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내내 일본작가 히라노 게이치로(42)의 ‘나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에세이집에 푹 빠져 있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교토대 법학부 시절, 소설 ‘일식’으로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해 ‘최연소(24) 수상자’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이 에세이집에서 “타인을 사랑하자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며 “그건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어려운 건 나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과거 여러 가지 일도 생각나고 나쁜 일이나 싫은 일들이 떠올라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뭔가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연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두 여성과 따로 데이트를 했다. 한 사람과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런다. 그런 자신이 즐겁고 여유도 생기고 이런저런 농담도 하게 된다. 다른 여성과는 뭔가 재밌는 얘기도 떠오르지 않고 조금만 방심해도 썰렁한 분위기가 돼 버리고 늦게까지 있지 못하고 일찍 헤어진다. 두 여성 중 누구와 다시 데이트를 하겠느냐고 한다면 당연히 첫 번째 여성이다. 그건 ‘상대가 좋아서’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이 좋으니까, 그런 자신에게 즐거움을 느껴 그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보람을 느껴서이다.
사랑이란 누구를 좋아한다는 그 정의 자체는 물론 틀림없는 것이지만 사랑이란 오히려 그 사람 덕분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첫 번째 여자 앞에서는 여유로울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어 여러 가지를 내보일 수 있다. 다른 사람 앞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언젠가 헤어진다. 불행하게도 싸우고 헤어지거나 사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거나 그 사람을 포옹하지 못하거나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 앞에서만 살아올 수 있었던 자신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돼 외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그 사람 앞에서 그렇게도 자유롭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 앞에서 뿐이었는데, 그렇게 바보같이 굴고 그렇게 시시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 앞에서 뿐이었는데 그 사람이 사라지게 되면서 자신은 더 이상 그를 좋아했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이별의 슬픔이 아닐까.
반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 “야호!”하고 외칠 만도 하다. 누군가에게 “당신 덕분에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다”는 고백을 듣는다면 혹은, “나는 다른 누구보다 당신과 있을 때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고백을 들으면 그런 말은 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내 존재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뭔가 감동적인 기쁨을 느낀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자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아마도 살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그 중에서 몇 십 퍼센트 또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사랑 받지 않으면 웬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겠다. 많을수록 좋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사고방식의 차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두 명이나 세 명이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울을 보면서 “아, 난 내가 좋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덕분에 자신을 사랑하고, 타자를 경유해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아마도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둘도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그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 한두 명을 갖게 된다면 자살 충동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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