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분명히 위험 징조가 있다
자살, 분명히 위험 징조가 있다
  •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 승인 2017.07.28 10:54
  • 호수 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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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명의들이 알려주는 건강정보<23>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아….”
한 의사 선배는 1년 전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명문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던 딸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항상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선배는 성격도 쾌활하고 표정도 밝았던 딸이 자살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 대학 입학을 생각하던 딸이 SAT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말을 자주 했지만 크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활습관 문제로 엄마와 조금 다툰 것뿐이었는데, 딸은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1.5명으로, 자살이 사망원인 중 4위를 차지한다. OECD 국가의 자살률이 평균 11.2명이며, 자살이 11번째 사망원인이라는 점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최근 들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노인층의 자살이다. 인구 10만 명당 10대의 자살률은 5.2명인 데 비해 70대에서는 83.5명, 80대 이상에서는 123.3명으로 자살률은 노인층에서 급증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 노인들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은 노인층의 빈곤이라는 사회적 현실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짧은 시간에 자살이 급증한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1997년 IMF 경제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에 자살이 급증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자살은 외부적인 사회‧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사회적 질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 역시 비슷한 시기에 IMF 경제위기와 같은 경험을 했지만 우리나라처럼 자살률이 치솟지는 않았다.
일본 역시 자살이 증가하긴 했지만 이후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한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우리 사회에는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렇다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유발요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흔히 스트레스를 주는 어떤 사건이 자살의 계기가 되는 경우,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사건을 ‘자살의 근접요인’이라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이별, 상실, 갈등, 경제적 어려움, 법적인 분쟁 등이 자살의 근접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경우, 몇 가지 위험징조가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하거나, 번개탄 혹은 목을 맬만한 자살도구를 찾기도 하며, 희망이 없다거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짐만 된다고 이야기하고 술을 자주, 또 많이 마신다. 이런 것들이 자살의 위험징조라고는 하지만 자살기도는 1년에 1000명 중 3명 정도가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자살시도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이런 위험징조를 알아차린다면,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은 죽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말리냐고 말한다. 자살은 개인적 선택이므로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약음독 등 자살 시도 후 응급실에 실려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후회스럽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이는 자살기도자 대부분이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자살기도자의 3분의 2는 자살기도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이하로 고민하며, 약 반수의 사람은 자살기도까지 10분 이하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만약 자살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고민과 고뇌를 누군가 들어주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자살을 선택하려는 누군가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출처: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 발행 ‘굿닥터스’(맥스Media)

 

홍진표 /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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