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우울증·자살 예방에 나선 ‘노년 행복 컨설턴트’
노인 우울증·자살 예방에 나선 ‘노년 행복 컨설턴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7.28 13:24
  • 호수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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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배 입장에서 고민 들어주면 ‘속 시원하다’ 해요”
▲ 복지부가 전국 노인복지관과 손잡고 진행하는 노년 행복컨설턴트 사업이 노인 우울증 감소에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북노인종합복지관 소속 노년 행복 컨설턴트(오른쪽)가 내담자를 상담해주는 모습.

전국 77개 복지관서 60세 이상 35명 선발해 각종 상담‧검사 진행
우울지수 높은 노인은 보건소 등 전문기관에 인계… 상담 효과 커

지난 7월 25일 서울 강북노인종합복지관에선 주황색 조끼를 입은 ‘컨설턴트’ 6명이 내담자를 응대하고 있었다. 상담을 받기 위해 방문했던 노인들은 처음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경직된 표정이 풀렸고 20분이 지나자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상담을 마친 노인들은 처음과 달리 환해진 모습으로 방을 나섰다. 복지관이 노인 우울증과 자살예방 차원에서 동년배 노인을 상담원으로 내세운 ‘노년 행복 컨설턴트’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복지관협회가 손잡고 추진하는 노년 행복 컨설턴트가 노인 우울증과 자살 문제의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노년 행복 컨설턴트란 일종의 노인자원봉사단으로 복지관 별로 60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 봉사단을 꾸린 후 우울증‧자살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지역 내 독거노인 등 우울증 위험군에 해당하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각종 상담과 예방활동을 진행하는 사업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현재 한국의 7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6.2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평균 자살률(10만 명 당 28.4명)과 비교해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더라도 2015년 기준으로 80대 이상과 70대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각각 83.7명, 62.5명으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가난, 건강문제 등 사회와의 단절에 따른 고독감이었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본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40.4%), 건강문제(24.4%)를 꼽았고 외로움(13.3%), 가족·친구와의 갈등이나 단절(11.5%), 배우자 사망(5.4%) 등 가족‧사회와 교류가 적어진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즉 생활고나 건강악화,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상담 한 번 받지 않다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지역 내 사회복지사가 이들을 모두 관리하기에는 인원 부족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해 보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행복컨설턴트의 역할이다.
2016년 시범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올해 서울 강북노인종합복지관 등 전국 77개 복지관이 참여해 복지관별로 35명을 선발해 2600여명의 컨설턴트가 활동하고 있다. 강북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봉사활동을 원하는 35명을 선발해 지난 5월 4회에 걸쳐 ‘노년 행복 컨설턴트 가이드북에 따른 자원봉사활동 교육’ ‘우울·자살 예방 교육’ 등을 진행했다. 이후 6월부터는 월~목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복지관 3층에서 복지관 회원 2만여명과 관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우울증 검사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복지관 홈페이지와 주민센터 등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도 병행해 매회 10명 내외의 어르신이 찾고 있다. 상담을 통해 고민을 해결한 어르신들 중 일부는 재상담을 요청할 정도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정상복(83) 어르신은 “우울지수가 높아도 이를 방치하는 노인들이 많았다”면서 “대화를 통해 우울한 기분을 떨쳐낸 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운영 방법은 복지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1차적으로 상담자를 대상으로 마음건강 스크린을 실시한다. ‘현재 생활에 대체적으로 만족하나’, ‘생활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나’ 등 15문항으로 구성된, 우울지수를 체크하기 위한 설문지로 답에 따라 점수를 1점씩 부여한다. 5점 이하일 경우 안정된 상태이지만 6~10점일 경우 경미한 우울증에 해당되고 11점일 경우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특히 컨설턴트들은 대상자가 고위험군에 해당될 경우 보건소 등 전문기관과 연결해줘 보다 체계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인계해준다.
경미한 우울증을 앓는 노인들은 대부분 고민을 혼자 끙끙 않는 경우가 많다. 상담을 하고 싶어도 상담원이 한참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아 속 깊은 고민을 꺼내지 못하는 일이 많다. 강북노인복지관에서는 달랐다. 어르신들은 처음엔 다양한 표정이 그려진 그림 중 자신의 처지와 어울리는 그림으로 우는 표정과 화난 표정을 고르고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한참을 주저했다. 20여분 넘게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자 내담자는 가족과의 불화에서 온 외로움 때문에 기분이 우울하다는 것을 털어놓고서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용자(76) 어르신은 “고민의 원인이 다양했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부분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상담과 함께 다양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사진=조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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