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한노인회장 이중근은 누구인가
신임 대한노인회장 이중근은 누구인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7.28 16:45
  • 호수 58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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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총수이자 사회사업가… 노인회 발전시킬 적임자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서울 서소문 부영그룹 사옥 14층에 위치한 이중근(76) 회장의 사무실. 응접세트엔 역사서 교정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방금 전까지 교정을 보다만 흔적이 역력하다. 벽에는 흔히 재벌그룹 회장실에 걸려 있는 외국의 유명화가 그림 대신 무명화가의 산수화가 걸려 있다. 김포공항에 갔다가 계곡에 흐르는 물이 시원해 보여 산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재계 순위 15위의 그룹 총수가 하루종일 머무는 곳 치고는 검소하다 못해 소박하기까지 하다.

▲ 이중근 신임 대한노인회장이 7월 28일 고세일 대한노인회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직무대행(오른쪽)으로부터 당선증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허니스

건설현장 막노동에서 재계 순위 15위 부영그룹 일군 입지전적 인물
학교‧기숙사 등 교육시설 5300억원 기부, 노인전문교육원도 기증

이 회장은 골프장을 5개나 가지고 있지만 골프를 치지 않는다. 술‧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틈틈이 책을 읽고 남산 산책을 즐기는 게 유일한 취미다. 스마트폰은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2G 폴더폰을 고집한다.
이중근 회장의 경영 철학은 ‘세발자전거론’으로 압축된다. 여기엔 50년 경영 노하우와 철학이 담겼다. 세발자전거론이란 기업이 망하지 않고 존속하기 위해선 두발자전거처럼 빨리 달리지 말고 천천히 가되 서서 쉴 수도 있고 편리하고 안전한 세발자전거처럼 가야 한다는 지론이다.
세발자전거론을 지렛대 삼아 기업이 안전하게 굴러가도록 만들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눈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건설현장의 막노동으로 시작해 오늘의 부영을 일구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15개 대기업 중 유일한 창업주이기도 하다.
이중근 회장은 1941년 전남 순천시 운평리에서 출생했다. 순천중을 마치고 순천사범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서울로 올라와 상지고에 진학했다. 졸업 후 건국대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1966년 부인 나길순 여사와 결혼, 청계천 판자촌 사글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던 시절 호구지책으로 건설현장 막노동을 시작했다. 이 회장의 회고.
“그때 일거리란 게 상하수도 고치는 것이었다. 신당동에서 약수동쪽 공사를 일당을 받고 했는데 일거리가 있다, 없다 하니까 생계형이 안되더라. 그래서 가옥수리센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뭘 알아야지. 청계천 판자촌엔 거의 다 건설 근로자들이 살았다. 저녁마다 찾아다니며 담배 한 대 권하고 ‘벽돌이 한 평에 몇 장 들어가는가’ 일일이 물었다. 몇 년 하다가 화곡동에 처음 집을 지었는데 그게 잘 돼 여기까지 왔다.”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76년 우진건설을 세워 중동 건설에 진출했다가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는 바람에 부도를 맞았다. 역경 속에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이를 본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줬다. 이런 모습이 1983년 ㈜부영을 설립해 재기할 발판이 됐다. 이 회장은 실패를 겪고 난 후 사석에서 당시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교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너무 자신 있어 했다. 이후로 최고, 최대, 최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내가 행정학을 했는데 행정학에서도 최적모형은 있지만 최고모형은 없다. 최고, 최대, 최상은 순간일 뿐이다. 인생에는 최적만 있을 뿐이다. 등산에 비유한다면 산에 오를 때는 최고봉이 있지만 인생에는 최고봉이 없다. 언제나 오를 뿐이다.”
이중근 회장은 사회사업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기부한 금액만 총 5300억원으로 이는 국내 500대 기업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 1위이다. 그는 전국 초‧중‧고, 대학에 교육시설과 사회복지시설 200개소를 건립해 기증했다. 우정교육문화재단을 통해 국내로 유학 온 외국학생 12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아시아‧아프리카 등 20개국에 교육시설 및 기자재를 기증했다.
이중근 회장은 교육 쪽에 많은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을 묻자 “처음엔 아파트를 지어도 학교가 없어서 팔리지 않아 내 이해를 위해 지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순천 정원박람회 후원을 계기로 지속적인 지원을 다짐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교육이란 게 나무를 심는 거와 같다. 다른 박람회는 건물을 지으면 감가상각만 발생하는데 정원박람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졌다. 나무가 계속 자라니까. 교육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갈수록 장대해지는 거다. 장래에 대한 기대”라고 덧붙여 말했다.
대한노인회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7년간 부회장을 역임하며 무주 노인전문교육원 ‘우정연수원’을 비롯 경로당과 노인회관 등을 지어 기증했고, 노노케어‧재능나눔사업의 씨드머니(종자돈)를 제공해 대한민국 노인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었다.
노인전문교육원은 지난 3월 개관 이후 매일 200여명의 경로당 회장들이 이곳에서 의식변화교육을 통해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또, 재능나눔사업은 올해에만 참여자 4만여명, 28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대규모 노인봉사활동으로 진화했다.
이중근 회장은 일흔 넘어 역사연구에도 혼신과 열정을 더했다. 우정문고를 설립해 역사 바로 알리기를 위한 5편의 역사서를 펴냈다. 조선개국과 후기,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등 근현대사를 꿰뚫는 방대한 양의 저서들이다. 이를 위해 ‘우정체’란 초유의 역사기술방식을 택했다. 즉, 세계사의 중심을 한국에 두고 사실 그대로를 일지 형태로 집필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역사서 시리즈 발간과 관련해 “6‧25를 북침이다, 남침이다 그러고, 통일이 안된다고들 말하는 게 안타까워 시작하게 됐다”며 “과거를 반드시 알아야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 게 가능하고 미래를 관조하는 일이 가능하다. 역사에 대한 시각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나이다. 역사서를 출간하며 깨닫게 된 생각이 ‘역사는 모방의 연속이며 세월은 관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기 위해서도 역사적 사실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근 회장의 시대가 열렸다. 앞으로 대한노인회가 성공신화를 쓴 부영그룹처럼 번영과 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300만 노인회원들은 기대와 희망, 설렘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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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계 2017-08-04 13:40:28
300만의 노인의 시대이다. 이 많은 노인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