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우고 갈아서 빚은 ‘금손’ 작가들의 공예품
태우고 갈아서 빚은 ‘금손’ 작가들의 공예품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8.04 13:42
  • 호수 5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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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크래프트 클라이맥스:경기 현대공예 2017’ 전
▲ 경기도를 대표하는 공예작가 32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시에서는 이들의 공예품으로 실제 집을 꾸며 실생활에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볼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편종필, 조용원, 김판기의 공예품.(왼쪽부터 순서대로)

경기 거주 도자기‧금속‧유리공예가 등 32명 초청, 240여점 선봬
옷감을 아크릴판에 결합한 목재장식장, 3D프린팅 도자기 인상적

‘금손’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손재주가 뛰어나 이것저것 잘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곰손’이다. 지난 8월 1일 경기도미술관에선 경기도가 자랑하는 ‘금손’들이 빚은 수려한 공예품들이 관람객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고온의 유리를 파이프로 불어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장식품부터 두꺼운 유리를 갈아낸 가루로 표현한 반투명 부조(浮彫)까지 화려한 손재주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장을 메웠다. 전시장을 찾은 양기순(61) 씨는 “기존 공예품과 달리 현대적이고 세련된 작품들이 많아 신선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신진 공예작가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크래프트 클라이맥스: 경기 현대공예 2017’ 전이 오는 9월 17일까지 경기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에 살거나 작업장을 둔 작가를 대상으로 사전조사와 전문가 자문, 작업장 방문과 면담을 거쳐 32명의 작품을 초청했다. 전국 도자기 생산의 절반쯤이 경기도에서 이뤄지는 만큼 도자공예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금속공예 7명, 목공예와 유리공예 각 5명, 섬유공예 4명 등 분야별로 고루 참여했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 ‘장인의 땅, 경기도의 현대 공예를 찾아서’에서는 경기도 31개 시‧군에 골고루 분포된 공예가들의 집과 공방을 지도 위에 표시해 활동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기산(箕山)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를 통해 전통 수공예 공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2부 ‘쓰임과 멋,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서는 본격적으로 공예작가들의 화려한 손재주를 볼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인 만큼 재료와 표현 방법 등에서 실험적 모습이 돋보인다. 손으로 제작해 ‘손맛’을 살리면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공예 작품이 주를 이뤘다.
숙련된 솜씨만 아니라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시도가 먼저 눈에 띈다. 이지숙은 민화로 낯익은 책거리를 현대인에게 추천하는 책을 담아 테라코타 부조, 즉 반입체의 도자공예로 표현했다. 3D프린터를 활용한 안성만 작가의 도예작품도 눈길을 끈다.
조용원의 목가구는 물결 모양의 패턴을 가공해 보는 방향과 조명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느끼게 했다. 이현정의 목재장식장은 한복에 곧잘 쓰이는 옷감인 노방을 아크릴판에 결합해 가림막으로 활용했는데 이를 통해 한옥의 문과 창에 비치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여성 관람객의 감탄을 자아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자개를 장식한 최선호의 작품과 12mm의 판유리를 그라인더로 갈아 투명한 유리에 부조를 조각한 이상민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함께 공예에 요구되는 실용성과 예술성의 균형에 얽매이지 않고 공예기법의 예술적 활용에 한층 무게를 둔 작품도 인상적이다. 박홍구는 오동나무를 태워 무늬를 내는 전통 방식을 발전시켜 용도를 특정하지 않은 기물과 가구에 추상성을 더한다. 섬유 대신 가는 구리선을 고리처럼 이어 마치 유기체로 만든 듯한 윤정희의 조형물도 이색적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장인이 손수 만든 공예작품들도 매력적이다. 윤석철의 금속공예품이 대표적이다. 그는 금·은·보석 등을 재료로 시계나 장신구는 물론 가위, 스테플러 같은 문구류까지 만든다. 전시장에서는 은으로 만든 한 쌍의 ‘모나미 펜’을 볼 수 있다. 대중적 필기구로 50년 넘게 사랑을 받아온 모나미 153 볼펜을 최고급 수제품으로 만든 것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3부 ‘공예가 있는 집’이다. 앞서 관람한 목공예, 섬유공예, 금속공예, 도자공예, 유리공예 작품으로 거실과 다이닝룸을 꾸몄다. 공예품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물건인 만큼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작품성이 강한 공예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만한 느낌이 없진 않으나, 우리집에 공예품이 들어온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는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 공간인 ‘공예 공방’에서는 공예가들의 공방을 방문해 촬영한 사진과 영상물, 그리고 공예가에게 필수적인 공방의 공구(工具)와 재료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공예가들의 작업 공간인 공방의 이모저모를 담았다. 도구와 재료가 즐비한 작업실, 작품의 보관 장소,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 작가의 손,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잡은 작가의 인물 사진을 소개한다. 또한 방문자의 질문에 답하는 공예가들의 동영상도 상영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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