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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근사함
[582호] 2017년 08월 11일 (금)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90세 넘은 일본 할머니들
작가·패션모델로 맹활약

남에게 폐 안 끼치면서
조용히 귀엽게 사는 어르신들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최근 보도를 보니 일본에서는 귀여운 할머니들의 활약이 대단한 모양이다. 그들은 사진작가로, 패션모델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9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작가로 데뷔하고 그들의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95세 작가 사토 아이코씨는 ‘90세, 뭐가 경사냐’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928년생 아마추어 사진작가 니시모토 키미코씨는 젊어서는 미용사로 일하다가 72세 때부터 사진을 시작했다.
독특한 것은 자신이 직접 피사체가 되어 작품에 등장한다. 쓰레기 봉지 속에 자신을 가두고 테이프로 꽁꽁 묵고 찍은 사진, 빨래 줄에 양팔을 끼워 자신을 널어놓은 사진, 자동차에 치여 쓰러진 사진들을 찍어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연다.
이런 현상은 대략 5~7년 전 부터 시작됐다. 당시 98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해 주목을 끌었고, 본격적으로 90세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의 에세이집이 히트하며 현재까지 230만부가 팔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100세 전후라는 뜻의 영어 ‘아라운도 한도렛도’(Around Hundred)를 줄여서 ‘아라한’ 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들 할머니 책의 독자는 역시 60~80대 여성이다. 이렇게 할머니 책 금맥을 찾은 출판계는 독자들이 찾고 있는 것은 ‘의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근사함’이라고 설명한다.
어디선가 본 글 중에 직장생활을 하는 딸과 함께 사는 일본인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녀는 딸이 집에 있는 시간에는 주로 밖에서 활동하고, 딸이 나가고 없는 시간엔 좋은 먹거리로 장을 봐 요리와 청소를 도와준다고 한다.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힘든데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즐겁고 행복해서 한다고 말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그들의 성향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부산가정법원의 천종호 판사 장모님 이야기도 그 맥이 비슷하다. 천 판사는 20년 가까이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장인이 세상을 떠나시자 남겨진 장모를 부양할 사람이 무남독녀인 자신의 아내밖에 없더란다. 그래서 본가의 장남인 천 판사는 장모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당시로선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교회 권사님인 장모님은 딸과 사위가 출근한 후 집안일을 돌보다가 저녁 9시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교회로 가신다. 그곳에서 기도하시다가 거기서 주무시고, 다음날 새벽기도를 마치면 집으로 와 아침밥을 지으시고 부부의 출근준비와 아이들의 등교준비를 도와주신다. 가족이 일터와 학교로 가고나면 다시 가사를 돌본다.
할머니의 정성어린 양육 덕분에 천 판사의 세 아이가 훌륭하게 잘 자랐고, 장남이면서 장모를 모신다고 지인들에게 칭찬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 하긴 쉽지 않지만 참으로 철저한 어른이시다.
백세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에도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현상이다. 삶은 가을과 겨울이지만 지혜와 열정은 한여름인 ‘신인류 100세 시대인’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입은 다물고 머리로 사유하고 손으로 글 쓰고, 사진 찍고, 몸을 움직여 봉사하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는 혼자 살든, 가족과 살든, 배우자와 살든, 부딪치는 일을 최소화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맥아더 장군이 이런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일정한 햇수를 살았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버리기 때문에 늙습니다. 해가 가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만 이상을 버리면 영혼이 늙습니다. 걱정과 의심, 두려움과 절망은 우리가 죽음을 맞기 전에 우리에게서 천천히 기운을 빼앗아가며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적입니다.”
오늘은 나에게 숙제를 내준다. 일본 할머니들처럼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조용하게 귀엽게 아프지 않고 사는 법을 연구하라. 폴 투르니에가 “삶은 단계별로 사랑을 배우는 학교”라고 말했듯이 삶의 길목마다 깨달은 이야기를 모아 내 인생 건강한 노년에 조용하게 귀엽게 책을 써내고 있다면 실패하지 않은 삶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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