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미치다!
늙음에 미치다!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7.08.18 13:10
  • 호수 5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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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간 청춘 향해
허망하게 손짓 말고

현재의 ‘나이듦’에 대해
그 묘미를 즐겨보자

한 아내가 70세에 바람난 남편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미치려면 곱게 미쳐!”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이보다 어떻게 더 곱게 미치냐. 넌 네 나이에 가슴이 뛰냐?”고 대응했다. 전쟁과 비극 한 가운데 매일 서야하는 필자의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나는 자주 부부 관계의 진공 가운데 들어선다.
이유가 무엇이고 시작이 어디건 간에 남성의 외도는 고통스런 결과를 만들어내 그 감정의 값을 치르게 되었고, 아내의 정지된 심장은 공감과 판단을 삼키어 마침내 이 둘의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 부부의 가슴 아픈 선택과 외침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혼자 남는 시간이 되니, 때 되어 울리는 알람처럼 ‘미치는 것’ 그 중에도 ‘곱게 미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대개 노년기에 ‘미치는 것’이라는 것은 치매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흔히 ‘곱게 미쳐라’라고 말할 때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보다는 정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말이나 행동이 사건으로 표출됐을 때, 그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리라.
과연 우리는 곱게 미칠 수 있을까? ‘미침’에 ‘곱다’를 과연 사용할 수 있을까? 미치라는 건지, 미치지 말라는 건지,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은 곱게 미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가능성과 사실 여부를 떠나 ‘미친다’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 그야말로 ‘회까닥’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허나 젊은 시절 ‘삶에 미쳐’, ‘사랑에 미쳐’ 혹은 ‘산에 미쳐’ 등 이런 표현들을 종종 들어 봤을 테니, 이 ‘미친다’는 것이 뭔가에 몰입하고 이에 완전히 홀려있는 상태라는 것도 알 것이다.
몰입과 홀림이 있다는 것은 열정과 집중의 상태이자 마니아들을 설명하는 주요 단어들이기도 하다. 다들 여기에 미치고 저기에 미쳐봤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의 자리인 ‘늙음’에 미쳐본 자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늙어감’, ‘나이 듦’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늙음의 의미와 그 과정 수집에 힘과 돈을 들여 보고 그 오미(五味)와 묘미(妙味), 그 즙을 마시고 누리며 ‘늙음에 미쳐본 자’는 얼마나 될까.
젊음에만 미치겠는가, 사랑만 탐닉하겠는가? 그 미치고 탐닉하는 대상이 늙음이면 안 되겠는가? 생애 가장 긴 시간이 된 이 늙음에 대한 탐색과 이 빠져듦은 불가능한 것인가?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HERE & NOW’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한 그 몰입의 상태를 말한다.
노년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기는 노년기이고, 지금은 늙음의 상태를 말할 테니, 그야말로 우리가 집중해야할 것은 우리의 ‘늙음’이고 우리가 탐닉해야할 것도 ‘나이 듦’이리라. 우리 삶의 자리에 대한 분석과 집중은 젊은 시절에는 ‘청춘찬가’로, 나이 들어서는 ‘나이 듦의 축배’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우리의 값진 현재를 두고 지난 청춘을 떠난 열차를 향해 손짓하듯 허망하게 불러대곤 했다.
늙음이 우리의 자리이고, 나이 듦이 우리의 현재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 ‘카르페디엠’ (carpe diem) 현재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한 전제로 오늘을 권해본다. 미쳐보자, 한 번도 미쳐보지 않았던 것처럼 늙음에 미쳐보자.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데 내일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충분히 몰입한 오늘이 내일을 낳으리니. 잊고 있던 우리의 자리, 우리의 시간인 ‘늙음’에 미쳐보자.
멋있고 곱게 미쳐볼 작정을 해보자.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미쳐보겠는가. 오늘은 늙음에 제대로 미쳐 내 늙음을 만끽해보자.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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