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각 모두 거장 반열에 오른 중국 대표작가
시·서·화·각 모두 거장 반열에 오른 중국 대표작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8.18 13:49
  • 호수 5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예박물관 ‘치바이스-목장에서 거장까지’ 전

가난한 목수서 거장으로 성장… 미술품 경매서 피카소 작품 능가하기도
개구리‧배추 등 흔한 소재 생동감 있게 담아내… 작품 ‘새우’ 등 인상적

▲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치바이스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전시에서는 시·서·화·각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1948년작 ‘새우’(왼쪽)와 ‘병아리와 풀벌레’(1940).

지난 2011년, 중국 북경에서 개최된 ‘춘계경매회’. 경매사가 한 작품의 낙찰을 선언하자 세상이 깜짝 놀랐다. 714억 5000만원. 그해 피카소를 뛰어넘는 경매가가 탄생한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고흐도, 떠오르는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도 아니었다.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 1864 ~1957)가 대만 총통 장제스에게 선물한 ‘송백고립도’였다.
20세기 동아시아 미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치바이스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 ‘치바이스-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 전이 오는 10월 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고향인 중국 후난성 박물관이 소장한 50여점의 작품과 80여점의 유물, 그리고 한·중 현대화가들이 그에게 바치는 4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치바이스는 농민화가로 시작해 중국인민예술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시(詩)‧서(書)‧화(畵)‧각(刻) 모두에서 거장 반열에 오르며 중국화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그는 후난성 시골 마을에서 살던 소몰이꾼이자 가난한 목수였다. 굶지 않기 위해 가구를 만들고 도장을 새기고 그림을 그려 팔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선인들의 작품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필묵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다.
그는 평생 수만 점의 예술품을 남겼을 정도로 다작을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대부분 작품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다작을 하게 되면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도 남기 마련이지만 치바이스는 달랐다. 타고난 천재성과 끝없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2011 춘계경매회에선 또 다른 작품인 ‘화조사병’(花鸟四屏)도 154억4800만원에 팔렸다. 또 선전(深圳)에서 열린 경매에서 ‘군룡입해도’(群龙入海图)가 1억2000만 위안(200억 원)에 거래되는 등 현재까지 작품 값이 고공행진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험가액만 1500억원에 달할 만큼 고가의 대표작들이 초청됐다. 이 때문인지 8월 11일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동‧식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작품들로 인해 긴장감은 곧 생동감으로 바뀌었다. 차바이스는 단숨에 그어 내린 듯 대담한 붓놀림으로 대상을 단순명료하게 표현했지만 어떤 극사실화보다 섬세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먼저 눈여겨볼 작품은 1948년에 완성한 ‘새우’다. 치바이스는 생전에 유독 새우를 많이 그렸다. 그의 작품 속 이미지와 달리 새우는 그에게 아픔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허드렛일을 마치고 개울에 발을 씻다가 새우에게 물려 고생했기 때문이다. 지독한 가난과 유년의 아픔을 상징하는 새우를 치바이스는 따뜻하고 발랄하게 묘사했다. ‘새우’에서도 8마리의 새우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이 파닥거리며 생동감을 뽐냈다.
많은 문인화가들이 매란국죽(梅蘭菊竹) 같은 고고한 소재에 집착했다면 치바이스는 보잘 것 없는 일상으로 눈을 돌렸다. 개구리‧배추‧버드나무‧사마귀‧호박‧나팔꽃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그렸다. 흔하디 흔한 소재를 일생에 걸쳐 무수히 반복, 묘사한 결과 대상의 본질과 미의 질서를 굵고 단순명료한 필획으로 표현한 그림은 단연 독보적이다.
참새와 개구리, 병아리와 풀벌레들이 화선지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그린 수묵화가 대표적이다. 화폭 위 개구리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하다.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담은 1931년작 ‘산수’를 들여다보면 마치 바람이 볼에 와 닿을 것 같다. 땅바닥에 흩어진 땅콩껍질의 꺼끌한 질감도, 망울을 터뜨린 매화의 꽃술도 손끝에 느껴질 정도다. 인물화 또한 해학과 유머로 가득하다. 등 긁는 늙은이, 술취한 이를 업고 헤벌쭉 웃으며 걷는 사람, 밥 지으려 불 지피는 남자 등 민초들의 풍경을 익살스럽게 그렸다.
예술의 근본은 ‘시’(詩)라고 믿은 치바이스가 그림 옆에 남긴 시구도 인상적이다.
“자그마한 연못가에 오이 시렁 하나, 오이 넝쿨엔 헛된 꽃이 달리지 않는다. 채소 먹으며 고향에서 배불리 사는 그대가 부럽거니, 문을 열고 조용히 개구리 소리 듣누나.”
또한 이번 전시엔 치바이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중 작가들의 작품도 4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198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사석원 작가가 치바이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새우, 게, 소 등을 그린 20여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시 관계자는 “청조(淸朝) 봉건사회, 중일전쟁, 마오쩌둥의 공산국가까지 20세기 격변의 중국을 살아낸 치바이스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오로지 붓으로 민중의 삶을 표현하고 어루만진 위대한 작가”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