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씨 같은 아름다운 분…” 이 말은 미란에게 가장 중요한 한마디였다
“미란씨 같은 아름다운 분…” 이 말은 미란에게 가장 중요한 한마디였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8.25 13:18
  • 호수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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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50>

수수께끼나 거는 듯 영훈은 어조를 변해 가지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 무언데요.”
“아름다운 것이란 말씀이죠.”
“무지개, 별, 꽃, 인물, 치장, 음악――그런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가지고 할 때 마음이 뛰고 행복스럽지만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할 때 얼마나 사람은 불행스럽습니까. 제일 훌륭하고 위대하고 힘을 가진 것이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돼지두 꽃만은 먹지 않는다든가요. 아름다운 것을 구하려고 애쓰는 건 예술가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같아요. 그것을 제일 흔하게 가진 백성같이 행복스럽고 넉넉한 백성은 없어요.”
“구라파 사람이 제일 행복스럽단 말씀이죠.”
“얕잡아 봐두 사실은 사실인 걸요.”
“이곳에두 아름다운 것이 그렇게 말랐을까요.”
“그야――”
영훈은 말머리를 돌리면서 웃음으로 어조를 달았다.
“미란씨 같은 아름다운 분두 계시기야 계시지만.”
“어쩌나.”
미란은 고개를 숙이고 손수건 한 꼬리를 입에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반드시 농담이 아닌 그 한마디야말로 가장 듣고 싶어하던 말이었던지도 모른다. 그 한마디를 이제 결론으로서 그의 입에서 직접 들은 것이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뙤어 주는 것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하고 특히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리석거나 어질거나 구별 없이 여자란 여자에게 그 반가운 판단을 들을 때같이 기쁜 때는 없다. 부끄럼이 아니라 기쁨과 자랑이 솟으면서 미란은 두 볼을 물들였던 것이다.
그날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미란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한마디였고 얻음이었다. 오랫동안의 은근한 시험 끝에 얻은 중요한 결말이요 성적이었다. 가야의 앞에서 아끼던 말을 영훈은 미란의 앞에서 선뜻 말해준 것이다. 낙제의 선언이 아니고 급제의 선언인 것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영훈의 상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미란의 마음은 흐붓하고 흡족했다.
그러나 한편 가야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성공의 반면에 숨은 희생이 가야의 경우같이 큼이 없다. 상대되는 극단에 서 있으면서도 미란은 가야를 미워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의 슬픔에 부딪치면 마음은 깨끗하게 맑아져서 그를 측은히 여기게만 된다. 찻집에서 찻잔을 마주 앞에 놓고 앉으면 말을 잊은 앵무같이 가야는 언제까지든지 입을 열지 않는다. 경우를 따라서는 사람에게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역력히 읽을 수 있었다. 참으로 고집스런 그 침묵 속에서는 시간의 한계조차 분명치 못했다. 시간이란 말 속에 적히고 이야기 속에 흐르고 역사책에 적히고 고목나무 연륜 속에 새겨지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는 때를 헤아릴 수 없어서 시간은 무한한 것 같고 슬픔도 무한하다.
슬픔이란 무엇일까――정체 없이 강감하고 막히고 아득한 것――달랠수 없고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슬픔이란 칼날같이 엄격하고 매운 것이 아닐까. 얼굴의 분은 한번 으끄러져도 다시 칠할 수 있는 것이요 마음에 안 드는 한 송이 과실은 그래도 참을 수 있는 것이나 어긋나는 사랑만은 어쩌는 수 없는 것이요, 그 슬픔에는 타협의 길이 없고 노력도 뜻 없는 것이다. 어둠과 절망이 가로막혀서 그 앞에서 입을 벌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수밖에는 없다. 수술대에 누워서 살을 베일 때에 이를 물고 눈물을 빠지지 흘리며 가만히 참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그런 처지와도 흡사하지 않은가. 육체의 슬픔이란 참으로 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두 눈의 초점이 다른 까닭에 가야의 표정은 때때로 희극배우가 일부러 꾸며낸 표정같이 가짜의 것으로 보이는 때가 있다. 두 눈에 고인 눈물조차 부러 괴덕을 부리려는 거짓으로 보이면서 그것이 한층 뼈저린 효과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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