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육체미 고스란히 담아낸 누드 걸작들
원초적 육체미 고스란히 담아낸 누드 걸작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8.25 13:38
  • 호수 5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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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미술관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 전

작품 발표 당시 주요 신체 부위 가렸던 로댕의 ‘키스’ 등 122점 전시
외설시비 일었던 ‘칸타울레스’, 남성누드화 논란 ‘닫힌 사랑’ 등 눈길

▲ 전시에서는 세계 미술사를 빛낸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서 누드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사진은 앙리 마티스의 ‘옷을 걸친 누드’.

미국의 대표적인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한국판이 9월호부터 발간을 시작했다. 육체미를 극대화한 여성의 ‘누드’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잡지여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나체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오래됐다. 원시예술에서도 나신을 묘사하거나 조각하면서 인간의 생명력과 움직임, 그리고 감정을 표현했다. 육체가 가진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예술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취급해 온 것이다.
이런 누드에 대한 인류의 오랜 관심을 소개하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근현대 미술품을 소장한 영국 테이트미술관의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 전이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서 오는 12월 25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댕의 대리석 조각상 ‘키스’를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자코메티, 루이즈 부르주아,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세계 미술사를 빛낸 거장 66인의 누드 122점을 볼 수 있다.
‘역사적 누드’, ‘초현실주의 누드’, ‘사실주의 누드’ 등 총 8개의 테마로 나뉘어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해 온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사랑의 신 큐피드를 기다리며 몸단장하는, 프레드릭 데이턴의 ‘프시케의 목욕’이 관람객을 맞는다. 목욕을 하려고 옷을 벗으며 관능적인 시선을 보내는 프시케의 모습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도 인상적이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다가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녹아 추락한 이카루스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세 요정을 그린 이 그림으로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초월적 욕망을 보여준다. 청년의 모습을 더없이 아름답게 묘사해 1898년 영국 로열아카데미에 처음 전시된 이후 유럽 대륙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외설이라며 비난받은 그림들도 걸려 있다. 윌리엄 에티의 ‘칸타울레스’ (1830)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의협기사’(1870)가 대표적이다. ‘칸타울레스’(1830)는 리디아 왕 칸타울레스가 장군 기게스에게 자기 아내가 옷 벗는 장면을 훔쳐보도록 연출한 장면으로 퇴폐적이란 비난을 받았다. 반면 ‘의협기사’는 그림 속 여인이 실제 사람과 너무 닮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당했다. 현재 두 작품은 누드를 이상적인 형태로만 미화한 고전주의 방식을 뒤집은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의미로 논란을 일으킨 애너 리 메리트의 ‘닫힌 사랑’(1890)도 함께 두고 볼 만하다. 스승이었던 남편과 사별한 뒤 그를 추억하며 그린 이 작품은 사랑의 신 큐피드가 굳게 잠긴 묘지의 문을 열기 위해 애쓰다 절망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19세기 보수적인 유럽 화단에서 여성이 그린 남성 누드로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에 널리 알리진 유명 작가들이 담아낸 누드 역시 관람 포인트다. 특히 ‘현대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1901~1904)는 전시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 로댕의 ‘키스’.

로댕이 대리석으로 빚은 단 3점의 조각상 중 하나로 무게가 3.3톤에 달해 전시장 바닥에 철판을 깔았을 정도.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남녀의 묘사가 지나치게 사실적이란 이유로 발표했을 때 작품 주위에 가드레일을 치고 민감한 부위는 종이로 가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로댕의 연인이었던 그웬 존의 ‘누드 걸’은 ‘키스’와는 다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풍만한 여성을 내세운 누드화와 달리 깡마른 데다 어깨도 구부정한 여인이 등장한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눈에선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여성미를 앞세워 타 누드화와 결을 달리하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도 여러 점 소개된다. 이중 인물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해체한 ‘앉아 있는 누드’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혁명적이라는 추상입체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지난해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733억원에 낙찰된 ‘앉아 있는 여인’(1909)과 같은 기법으로 그려졌다.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누드를 소비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1980년대 들어 대형 크기의 사진들이 등장하면서 누드를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로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신디 셔먼, 존 코플란스, 트레이시 에민 등의 작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누드화가 주로 여성의 신체를 묘사하는 데서 나오는 성의 권력관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페미니즘 예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앨리스 닐, 실비아 슬레이 등이 전통적인 여성 누드의 포즈를 한 남성의 누드를 묘사한 작품들은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커지는 요즘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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