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나의 삼 벗
소나기가 데려다 준
하늘이와 구름이와 여름나무,
늘 눈에 담고 살래요.
늘 맘에 품고 살래요.
김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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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는 ‘오우가’에서 ‘水石松竹月(물‧돌‧솔‧대나무‧달)’, 이 다섯 벗 이외에는 더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 물은 깨끗하고 그침이 없어서, 돌은 변하지 않아서, 솔은 눈서리를 모르는 불굴 때문에,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러서, 그리고 달은 작은 것이 높이 떠 천지를 다 보면서도 말하지 않으므로 벗으로 삼았다 하였다.
이 디카시는 하늘과 구름과 나무, 이 세 가지 벗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움푹 파인 돌에 소나기가 한소끔 지나가자 돌의 품속에 맑디맑은 눈동자가 생겨나고 그곳으로 하늘이와 구름이와 무성한 여름나무가 가득 들어왔다. 생명이 없던 돌이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살아 숨 쉬는 심장을 갖게 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시인이 이 장면을 포착하지 않았더라면 돌은 그저 잠시 물기를 머금은 돌덩이일 뿐인데, 시인이 눈에 담고 가슴에 담는 순간 저 돌과 하늘과 구름은 생명을 얻게 되었다. 구름 한 점, 돌멩이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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