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란은 책망하면서도 은근히 두 사람의 옥신각신을 환영하고 있음이 사실
세란은 책망하면서도 은근히 두 사람의 옥신각신을 환영하고 있음이 사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9.08 13:26
  • 호수 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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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52>

진피를 부리는 단주의 태도에 미란은 화가 나고야 만다. 머리털까지 화끈 달아 올라올 때에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미운 것인 듯 어쩌다가 그런 사내와 인연이 맺어졌나 싶으면서 불서러운 생각조차 들었다.
“…… 찰그마리 같은 뇟보!”
저주는 목소리를 높여서가 아니라 마음속 깊이 하는 법이다. 창자 속에서부터 저주의 한숨이 길게 새어 올라서는 증오에 불타는 눈초리에 그득히 넘치는 것이다.
그러나 단주는 더욱 뽐을 낼 뿐으로 산을 등진 범같이 의기가 등등해서 이제는 자기가 제일가는 가장이요 어른인 척 집안을 마음대로 짓무지르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미란의 피아노를 점령하고 앉아서는 교칙본 이 군데 저 군데를 되고말고 울려 보면서 미란이 폭발되기만을 기다리는 태도였다. 화음을 이루지 못한 어지러운 불협화음을 음악이 아닌 잡음을 함부로 치는 것 을 들을 때에는 벌집을 쑤셔 벌떼를 만난 것같이 미란은 신경이 아파지면서 음악을 모욕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마디 쏘아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양이가 걸어가두 그보다는 낫겠다.”
두 팔로 건반 위를 거의 덮다시피 하고 우레 같은 요란한 소리를 한꺼번에 내고는 미란이 그렇게 대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단주는 돌아앉으면서 대꾸하였다.
“고명한 선생에게서 배운다구 저 큰소리지. 선생의 손가락이나 고양이의 발고락이나 일반인 줄은 모르나.”
“다시 음악을 모욕했다 봐라. 그대루 안 둘 테니.”
“그 알량한 음악――그 알량한 선생. 아주 음악가라구 뽐을 내면서. 천재라는 게 한 세기에 한두 사람쯤 태어나는 것이지 어중이떠중이 다 천재가 됐다간 세상이 온통 천재 천지가 되게. ――제자의 품행이 병(丙)이라는 것을 알아두 그렇게 점잔을 뺄까.”
“무엇이 어째. 무엇이――”
“어디 용기가 있거든 자기 품행 이얘기 선생한테 좀 해보지. 멀쩡하게 제 허물은 싸버리고 제 품행은 갑이올시다구 탈을 쓰구 한 눈은 팔면서두.”
아픈 데를 찔리운 듯 전신의 피가 한 곳――얼굴로 모여 미란은 발끈해지면서 마루를 구른다.
“얄궂은 망나니!”
“언제든지 부처님 같이만 하구 있을 줄 알구――내게 거역만 해보지 가만있을 줄 아나. 입만 한번 벌리면 하룻밤 일쯤야 단박에 세상이 알 걸 가지구.”
“비겁한 것!”
“못난 것!”
참을 수 없어 닥치는 대로 손에 쥐이는 책권을 단주에게 던진다. 책은 그의 낯짝을 갈기고는 떨어져 건반을 요란하게 스친다. 힘만 자란다면 달려들어 목이라도 눌러 버리고 싶게 몸이 수물거릴 때 수선스런 기세를 듣고 안방에서 세란이 뛰어나온다.
“웬일이야 요새. ――개와 고양이니.”
책망은 하면서도 은근히 두 사람의 옥신각신을 염려는커녕 환영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단주가 미란에게로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 감이 반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고 미란의 거역이 한 걸음이라도 단주를 물리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의 두 사람의 태도가 웬일인지 점점 자기의 원대로 뜨기 시작한 것이 그에게는 숨은 기쁨이었다. 그러나 단주에게는 단주로서 비밀이 있음을 세란인들 어찌 알았으랴. 세란이 어른답게 책망을 하며 법석을 하는 것이 단주에게는 남 모르는 기쁨을 자아내게 한 것은 세란에게 대해서 스스로의 비밀을 가지고 있음을 기뻐하고 자랑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비밀이란 것이 무서운 괴롬이 아니고 그에게는 기쁨이요 자랑이었다. 미란과의 비밀을 단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란의 앞에서 한없이 즐기면서 내게는 또 이런 수도 있었다는 듯 한 꺼풀 윗길로 그를 속여 보는 것이 신기한 자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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