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도서관
노인과 도서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9.15 13:13
  • 호수 5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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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노인의 빈곤과 외로움 극복하시길…”

도서관에 얽힌 추억도 가지가지다. 기자의 어린 시절, 서울에서 도서관이란 공공시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고교 시절 학교도서관은 ‘책가방보관소’였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 빈자리에 책가방을 갖다놓고 운동장에 나가 신나게 공을 찼다. 날이 어두워지면 수돗가에서 대충 얼굴을 닦은 후 도서관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챙겼다. 도서관에 차분히 앉아 공부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대학에서의 도서관은 ‘헌팅 장소’에 불과했다. 예쁜 여학생의 옆자리에 앉아 책은 건성으로 보며 ‘어떻게 하면 이 여학생과 친해질 수 있나’ 기회만 틈틈이 노리던 음습한 공간이었다.
사회에 나와선 도서관 발길을 끊었다. 기자의 첫 직장은 신문사였다. 신문사에는 도서관 대신 자료실이 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신문제작에 필요한 자료와 사진 등을 확보해 놓은 곳이다. 국내외 신문‧잡지 기사를 사건‧인물별로 채집해 누런 봉투에 담아 도서관분류법에 따라 보관했다. 자료실 직원 20여명이 커다란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풀과 가위를 가지고 기사를 오리고 붙이고 했다. 물론 정기간행물을 볼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구비해 놓았다.

요즘은 인물을 인터뷰하거나 사건을 취재할 때 가장 먼저 인터넷을 뒤지지만 당시는 자료실부터 찾았다. 누런 봉투에서 원하는 과거 기사를 꺼내 복사를 하고는 봉투에 넣어 제자리에 갖다 놓곤 했다. 자료실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초짜 시절 졸음이 오면 동료에게 눈짓을 보내 자료실에서 만나 나란히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즐겼다. 사무실에선 대기자들이 낮잠을 자기 때문에 신입 주제에 ‘동숙’하기가 거북했다. 어느 날 그 장면을 본 선배기자가 인사부에 찔렀다. 기자는 그 일로 시말서란 걸 처음 쓰기도 했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요즘 기자는 다시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백세시대’ 신문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일차적으로는 인터넷에서 구하지만 도서관에서 구할 때도 종종 있다. 수년 전 본지에 ‘인문학 산책시리즈’를 쓸 때는 주말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며칠 전 일간지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서울의 은평구립도서관이다. 숲속 한 가운데 들어앉아 마치 외교관 등 특수층이 거주하는 고급빌라처럼 장엄하면서도 도도하게 보였다. 도서관 이름도 ‘석양의 신전’이다. 8013㎡ 부지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이다. 도서관 한 가운데에 우물도 만들어 “고요히 자신의 내면 풍경을 비추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은평구민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도서관들이 세련되고 멋진 공간으로 바뀌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건축 중인 서울 마포구도서관도 규모로 보면 대기업 본사건물을 연상시킨다. 출근할 때마다 공사현장을 지나며 완공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승용차도 아니고 휴양지콘도이용권도 아니며 사랑스런 손주들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가장 가까이 두어야 할 건 도서관이란 생각이 명료해진다. 노인과 도서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노인은 책을 통해서 노년의 탐욕과 과욕을 다스리고 책 속에서 희망과 꿈을 찾고 볼 일이다. 노인이 무슨 돈이 있어 물욕을 해결하겠는가. 노인이 무슨 힘이 남아 있다고 부귀영화를 쫓겠는가.
대한노인회도 일찍이 노인에게 인문학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이 심 회장 시절 노인들의 지적 감수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경로당을 ‘북카페’로 변신하는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현명한 노인들은 책에서 노년의 외로움과 빈곤을 해결한다. 80세에 세계배낭여행을 다녀온 김영기 KBL(81‧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는 “밖에 나가면 돈만 써. 손주들 보는 것도 5분이야. 나는 요즘 책 읽는 재미로 살아”라고 말했다. 데카르트도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어르신들이여, 반려자와 함께 있다 행여 마음의 상처나 충격 따위 받지 마시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도서관으로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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