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이 연구소의 문을 열었을 때 의외의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미란이 연구소의 문을 열었을 때 의외의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9.15 13:20
  •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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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53>

같은 비밀을 가지고도 단주와는 반대로 세란에게 대해서 그것을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미란이다. 순간의 실수로 뜻하지 않은 비밀을 가지게 된 미란은 형이 만약 그것을 알면 자기의 꼴을 무엇으로 여길까 해서 세란의 앞에서 무한히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그가 만약 세란과 단주와의, 도리어 자기 이전의 비밀을 안다면 이런 생각도 얼마간 변할는지는 모르나 조물주가 아닌 그가 형들의 그것을 알 리는 없었던 것이다. 미란은 형에게 비밀을 감추려고 하고 세란은 동생에게 비밀을 감추려고 하면서 두 사람은 방패의 각각 자기편의 한쪽 빛만을 알고 건너편의 남의 빛은 모르고 있는 장님이었던 것이다. 장님은 자신이 없고 염려가 깊은 법이어서 두 사람의 대담하지 못하고 활달하지 못한 태도는 그 서로의 흠집을 가지고 있는데서 왔다. 세란과도 비밀을 가지고 미란과도 비밀을 가진 단 한 사람 단주만이 두 사람의 비밀의 열쇠는 자기의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듯이 두 사람에게 대해서 자랑을 보이고 은근히 위협을 하면서 기세를 올리는 것이다. 세 사람 속에서는 그만이 가장 유식하고 자랑스럽고――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조물주의 입장에 서있는 셈이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마음속에 거느리고 지배하고 운전하면서 활개를 펴고 뽐을 내는 셈이었다.
“나를 다시 업신히만 여겨봐라…….”
세란의 부축으로 힘을 얻은 단주는 미란을 한 겹 더 엎어 씌운다.
“중병이나 하는 듯 꿍꿍거리면서 가짜의 표정을 꾸미구 어쩌다 남을 올개미 씌워 가지구는 지금 와서 천하나 잡은 듯이…….”
미란은 불같이 퍼붓다가 세란의 앞임을 깨닫고는 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봐라. 대꾸를 해 주니까 괜 듯만 싶어서――”
“아니 왜들――.”
세란의 말리는 소리를 옆 귀로 흘리면서 고개를 뽑고 눈을 부르대고,
“비루한 것!”
외치고는 대청을 뛰어나가는 미란이었다. 집이 굴속 같으면서 잠시도 머물러 있기가 거북하고 싫다. 종종걸음으로 뜰을 헤치고 문밖에 나서서는 그 모양 그대로 내달았다. 거리에서 그를 용납하는 곳은 어디이던가. 연구소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날은 연구소에도 괴변이 일어나 있었다.
전차를 타고 걷고 했으나 가라앉지 않는 마음에 조금 번잡스런 시늉으로 연구소의 문을 열었을 때 의외의 광경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은 듯 벌어져 있었다. 만약 방안에 영훈 혼자만이 있었던들 미란은 문을 열자마자 뛰어들어가면서 그날만은 기어코 그에게 달려들어 분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애정을 구했을는지 모르는 것이며 미란은 그것을 마음속에 원했던 것이다. 그런 것이 방안의 공기는 의외의 긴장을 띠어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영훈의 옆에 가야가 앉아 있는 것이요, 그 옆으로는 알지 못하는 초면의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근골이 장대한 그 위장부는 아무리 보아도 연구생의 한 사람인 듯싶지는 않았다. 이름난 스포츠맨의 한 사람일 듯――스포츠맨이란 생각에서 미란은 가야의 약혼자 갑재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났고 말을 듣는 동안에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익히 들은 문제의 그 사람임을 안 것이었다. 갑재임을 안 때 벌써 세 사람의 그 자리의 공기와 관계도 대략 짐작되었으나 보고 있는 동안에 그 관계라는 것은 급속도로 험악해 갔다. 영훈과 가야와는 달리 갑재는 미란의 출현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고 주의도 안 하면서 담판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음악이란 간판이구 낚시인 셈이지.”
그 전에 얼마나 많은 말이 오고갔는지 벌써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고 싸움의 쟁기(爭氣)였다.
“세상에 음악가라는 위인들같이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을까. 저를 위한 음악이 아니구 세상에 보이려구 하구 세상을 놀래려구 하기에 급급한 그런 것이 요새 음악가가 아니구 무언구.”
“당신들 체육가두 자기를 위해서 체육하는 게 아니구 세상에 보이려구 하는 것인가. 펄쩍펄쩍 뛰면서 세상을 놀래려구――그처럼 무의미하구 쓸데없는 짓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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