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여행했을까
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여행했을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0.13 13:27
  • 호수 5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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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추석 연휴에 지방여행을 다녀오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했나 궁금해졌다. 마침 그런 의문점을 풀어줄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사대부 산수유람을 떠나다’(정치영 지음‧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선조들의 ‘고생바가지’ 유람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선비들이 많이 찾은 곳은 백두산‧금강산‧북한산‧지리산‧속리산‧가야산‧청량산 등지였다. 백두산은 그때나 지금이나 민족의 영산이었다. 고려 말 금강산은 100여개의 절이 있는 불교성지였다. 북한산은 전국에서 과거를 보러온 유생들이 시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올랐다. 평소 존경하던 유학자의 흔적을 더듬어보려고 속리산(송시열)‧청량산(이황)‧가야산(최치원)등을 찾기도 했다.

이들의 여행 짐은 이삿짐을 방불케 한다. 기본적으로 쌀과 반찬, 솥과 밥그릇, 술을 준비하고 옷과 삼베로 만든 천막, 미투리, 이부자리, 표주박, 담배, 청심환, 청려장 등을 챙겼다. 이중에서 빠지지 않는 건 이부자리. 숙박 장소였던 사찰이나 원, 역촌, 관아 등에서 이불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여행객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주막도 목침 하나 줄 정도였다.

비를 피하기 위해 기름종이로 만든 유의(油衣)와 햇빛을 막는 패랭이도 필수품이다. 정약용은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 병풍, 휘장, 담요, 이불 등의 가재도구와 붓, 벼루, 서적 등을 챙겼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교통수단은 주로 말이었다. 소나 나귀, 배도 이용했지만 드물었다. 이들은 평탄한 길에서는 90리 내외, 산길에서는 60리 정도를 걸었다. 오늘날 거리로 환산하면 하루에 평균 40여km이다. 노복이 고삐를 잡은 말을 타고 이 정도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2명의 견마잡이를 동원한 세력가도 있고 현직관료들은 가마를 타기도 했다.

예조판서로 함흥 출장을 다녀오면서 금강산 유람을 한 이정구는 쌍교를 탔다. 쌍교는 말 2마리, 말몰이꾼 2명과 가마꾼 4명 등이 필요하다. 위엄과 안락함, 화려함을 두루 갖춘 가마로 2품 이상의 관리와 관찰사, 승지를 지낸 이만 탑승했다.
놀라운 사실은 가마를 타고 높은 산을 올랐다는 점이다. 산에서 타던 ‘남여’란 가마는 두 개의 장대 위에 의자만 올려놓은 간편한 스타일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대감들이 궁궐에 출퇴근할 때 타는 가마이다. 남여를 멘 이는 승려였다. 절마다 가마를 전문으로 메는 승려가 있었다. 조필감이란 선비는 ‘동행일기’에서 “남여를 멘 중들이 매 백보마다 한 차례씩 가마를 바꾸어 메는데 숨이 차서 씩씩거리는 소들처럼 힘들어하면서 땀을 흘렸다”고 기록했다. 여행자들이 식사부터 운송까지 승려들을 부려먹는 바람에 절을 떠나는 승려들이 많았다.

사대부들이 절경을 눈앞에 두고 시 짓고 그림만 그리고 있지 않았다. 악공이나 기생을 시켜 풍악을 울렸다. 때로는 피로감을 잊기 위해 악공들로 하여금 계속 피리를 불게 했고, 산중에 호랑이가 많아 이를 쫓기 위해 쌍각을 불며 앞에서 인도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이 연주한 악기는 피리‧비파‧나발‧대금‧퉁소‧북‧생황‧거문고 등 다양했다. 특히 뱃놀이에는 악공과 기생이 빠지는 경우가 없었다. 조식은 지리산을 향해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에도 기생 10명과 피리‧북‧나발을 연주하는 악공들을 동승시켰다.

조선시대의 산은 요즘과 달리 호랑이가 뛰어다닐 만큼 울창했다. 권섭은 서하동, 지금의 태백에서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서하동에서 자고 안개 낀 아침에 뒷산 봉우리에 올랐다. 높은 꼭대기에 황소만한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같이 갔던 노복 하나는 달아나 버렸다. 나는 부싯돌을 쳐 불씨를 내고 다복싸리와 솜대를 베어 불을 피워 놓고 호랑이와 마주 앉아 있었으나 두렵지 않았다. 호랑이가 한 번 뛰어 옆에 있는 언덕의 중턱으로 옮겨 앉은 뒤에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되돌아 내려왔다”고 쓰고 있다.
비록 위험하지만 오염되고 때 묻지 않은 그때가 여행하기 좋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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