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에 기쁨 주는 어르신 수리봉사단
지역주민들에 기쁨 주는 어르신 수리봉사단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10.20 19:24
  • 호수 5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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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물건 새것처럼 살리는 맛에 봉사합니다”
▲ 숙련된 손기술을 이용해 수리봉사에 나선 어르신들이 지역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무상으로 장난감을 수리해주는 키니스장난감병원에서 ‘장난감 박사’로 봉사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

인천 키니스장난감병원 하루 10건씩 연간 2000건 이상 무상수리
충북 영산동경로당 장날마다 무료로 칼 갈아주며 봉사대상 수상
서울 동작구 노인 고용해 무료로 우산 수선… 年 1000개 이상 고쳐

[백세시대]지난 10월 13일, 인천의 한 병원. 다소 나이가 많은 ‘의사’들이 새로 온 환자를 맞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일반 병원과 달리 의사들은 가운을 입지도 않았고 청진기와 주사기도 없었다. 드라이버를 비롯한 각종 공구를 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손을 거쳐 간 환자들, 즉 고장 난 장난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것처럼 움직였다. 이곳에서 장난감 수리봉사를 하는 김경래(70) 어르신은 “장난감 수리 수요가 많아 늘 바쁘다”면서도 “장난감에 애착을 갖는 아이들의 추억을 이어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숙련된 손기술을 활용해 망가진 물건들을 고쳐주며 일명 수리봉사에 나선 어르신들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망가져 버려질 위기에 처한 장난감과 날이 상한 칼, 작동하지 않는 우산 등 고물이 된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자원낭비를 막고 있는 것이다.
가장 활발히 수리 봉사를 펼치는 곳은 인천의 키니스장난감병원이다. 공학도 출신 김종일(70) 이사장이 ‘세상에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한다’라는 목표를 갖고 동갑내기 교수인 김기성, 하영선, 김영봉 어르신 등과 함께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로 ‘키니스(Kinis)’라는 이름은 아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노인을 상징하는 실버(Silver)를 합성해 만들었다.

2011년 문을 연 이곳은 한때 사회적기업으로 추진됐지만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봉사라는 설립 취지와 들어맞지 않아 비영리 민간단체로 조직됐다. 현재 이곳에서 60시간의 교육을 거쳐 보수를 받지 않고 장난감을 고치는 65세 이상 ‘장난감 박사’ 7명이 활동 중이다.
김종일 이사장은 “국내 장난감업체들은 중국에서 장난감을 수입하거나 유통만 해 수리서비스를 잘 하지 않는다”며 “정든 장난감이 망가져 속상해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난감병원에선 하루에 10건 안팎의 장난감 수리 의뢰를 소화한다. 전국에 장난감 무료 수리점이 흔치 않은 탓에 매년 의뢰가 2000∼3000건에 달한다. 대부분 후원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재정은 넉넉지 않은 편이다. 한때 병원 문을 닫을 위기에도 처했지만 현재 입주한 문화공간 아트애비뉴27측에서 무상으로 공간을 임차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키니스의 목표는 전국에 지사를 세워 더 많은 아이들이 장난감 수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수리 노하우를 전수받아 전국에 장난감병원 지사나 지부 같은 게 세워져 더 많은 사람이 장난감 수리를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칼을 무료로 갈아주는 봉사단도 있다. 충북 영동군 영산동경로당에서 운영하는 칼갈이봉사단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매달 9일과 19일 영동전통시장 터 한쪽에 자리를 잡고 무뎌진 부엌칼과 가위, 낫 등을 무상으로 새것처럼 갈아준다.
평균 나이 80세인 봉사단원들이 이 같은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7월부터다. 농촌의 노인들은 대부분 경로당에서 화투놀이를 하거나 장기 등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고,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좀 더 보람 있게 노년을 보내 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몇몇 노인이 뜻을 같이하면서 봉사단이 출범했다.

이후 단원들은 영동전통시장상인회의 도움으로 작은 공간을 얻어 칼갈이를 시작했다. 부엌칼이 무뎌져도 가정에서 날을 세우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던 주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장이 서는 날이면 부엌칼을 비롯해 각종 농기구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의 칼을 모두 가지고 나오는 이장들도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서무성(75) 단장은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낸다는 데에 단원들 모두 의미를 두고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산을 무료로 고쳐주는 곳도 있다. 서울 동작구는 65세 이상 노인을 고용해 망가진 우산을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우산 무상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자원 재활용과 건전한 소비문화 확산을 위해 대방창업지원센터에 문을 연 우산수리 사업은 지난 2014년 처음 시작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센터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늘어 2015년 1100여개의 우산을 수리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300여개를 수리하는 등 이용 건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찢어진 부분을 꿰메는 단순 수리부터 우산살을 바꾸는 전문 수리까지 부품이 확보되는 우산은 전부 수리 가능하다. 평균 2일 정도의 수리 기간이 소요되며, 수리가 끝난 후 한달 동안 찾아가지 않는 우산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에 비치해 일반주민에게 대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수리공으로 활동하는 강한식(74) 어르신은 “버려지는 우산 중에 조금만 손보면 멀쩡한 것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많은 우산을 고쳐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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