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길잡이
길을 막은 것이 미안했을까?
안개가 태양을 데려왔다
나의 동쪽은
신호등보다 선명하다
송상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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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인지 저녁인지 몰라 책가방을 들고 학교를 간 적이 있다. 이미 저녁을 위해 모인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 속상했던 기억은 어스름에 대해 내가 가진 첫 트라우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디카시의 안개는 출근길인지 퇴근길인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을 가고 있다. 도로는 오고가는 이 하나 없이 적막에 휩싸여 있고 오른쪽으로 꺾으라는 선명한 길 안내가 나타났다. 곧장 가야할까? 꺾어야 할까? 태양이 떠오르고 마침내 그곳이 동쪽이라는 확신이 선다. 이제 저 태양만 따라가면 나의 동쪽은 신호등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내게도 막막한 순간 길잡이가 되어줄 밝은 사람 하나 있다면 언제든 길을 잃지 않을 텐데….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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