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이현세 “만화 인생 38년… 노인과 손주 위한 만화 그리고 싶어요”
만화가 이현세 “만화 인생 38년… 노인과 손주 위한 만화 그리고 싶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1.03 14:30
  • 호수 59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린 ‘공포의 외인구단’…30대에 명예와 부 안겨줘
‘천국의 신화’ 6년 끌던 재판으로 만화 열정 못 폈지만 후회 안 해

[백세시대=오현주기자]한국 성인만화의 출발점이자 분수령을 이룬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61) 화백이 최근 “노인과 손자를 위한 만화를 그리겠다”는 말을 했다. 이 화백은 “그 만화에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낭만과 현실적 문제가 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38년 만화 외길을 걸어온 이 화백은 한국 만화를 대중문화의 궤도 위에 올려놓았으며 그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었다. 남녀노소가 그의 작품에 몰입했고 그의 만화작품들은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만화가로는 드물게 TV CF를 찍기도 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 개포동의 화실에서 이 화백을 만나 식지 않은 만화 열정과 못 다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리나 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그립니다. 내년에 출간 예정인 ‘그리스‧로마신화’를 직원들과 함께 그리고 있어요. 지금까지 ‘삼국지’‧‘한국사’‧‘세계사’ 등 역사 시리즈 전집류를 많이 했어요.”
-노인을 위한 만화라면 어떤 건가.
“저하고 같이 나이 들어가는 노인들을 위해 낭만과 현실적 문제를 그리려고 합니다. ‘나니아연대기’‧‘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작품도 실제로 작가가 손주나 자매들에게 들려주는 판타지동화입니다. 제 나이에 맞는 걸 그리는 게 행복할 것 같아요.”
-나이에 맞는 그림이라고.
“5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난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애감정이 사라진 이 나이에 연애만화를 그린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겁니다. 작가는 자기에게 정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서 그런 것처럼 얘기를 꾸미는 건 엉터리이고 독자들은 다 알아요.”
-노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
“국가와 사회, 자식들에게 다 줘 버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게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만화를 그리려고 해요.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아 인기작가 중 하나가 돼 대접도 받고 체력이나 운도 따라주어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지만 대부분 만화가들의 삶이 여유롭지 못해요.”
-원로 만화가들 소식은 듣고 있는지.
“손의성‧박기정‧박기준 선생과 개인적으로 만나 술자리를 가져요. 고우영‧김원빈‧최경 선생은 돌아가셨고요.”
-60세 이상 만화가들이 몇 명인가.
“300명 정도 됩니다. 만화가들의 평균수명이 짧아요.”
-만화 그리는데 나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나.
“예술작품 중에 만화가 가장 노동집약적입니다. 글을 써서 100쪽의 만화를 만들려면 적어도 500컷을 그려야 해요. 그것도 직접 내 손으로 그려야 해요. 제자들 그림은 독자들이 어떻게든 알아봐요. 나이 먹는다고 의욕, 재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제 경우는 손이 미세하게 떨려 작은 점을 찍는 건 힘들어요. 그걸 역이용해 스케치할 때 단 번에 쭉 긋던 선을 요즘은 여러 차례 나누어 그립니다.”

이현세 화백은 경주에서 컸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저 강은 알고 있다’(1978년)로 데뷔한 이후 ‘공포의 외인구단’‧‘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아마게돈’ ‧‘남벌’‧‘천국의 신화’ 등을 발표했다. 한때 거부감을 가졌던 웹툰에 2년 전부터 ‘천국의 신화’를 연재 중이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로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2016년) 등 수상.

▲ 이현세 화백의 기억에 생생한 어릴적 경주의 만화가게.

-어떻게 만화를 그리게 됐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화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원래 꿈이 화가였지만 색약이라서 미대 진학이 불가능했어요. 당시 만화는 흑백이라 상관이 없었지요. 연좌제 때문에 공무원이나 군인이 되는 길은 처음부터 막혀 있었고요.”
-색약이라니.
“적록색약은 적색․녹색 두 개의 색이 서로 대치될 때 트러블이 생겨요. 한 장짜리 컬러만화를 그릴 때는 상관없지만 학습용 채색일 경우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요.”
-연좌제는 또 뭔가.
“만주로 떠났던 둘째삼촌이 6‧25 때 인민군 장교가 돼 할머니 댁에 들러 밥 한 끼 먹고 갔어요. 그 일 이후로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어요.”
-출세작은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1980년대 국보위는 사회정화를 한다고 두 가지를 했어요. 삼청교육대와 인쇄출판 검열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만화는 아동에 준한다’는 대통령 령을 내렸어요. 따라서 고우영의 ‘수호지’ 같은 만화는 단행본으로 나올 수가 없었지요. 전국의 만화가들을 안기부 마당에 모아놓고 자정결의를 시키기도 했어요. 비가 오는 남산 길을 내려오면서 참담했어요. 그때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려야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까치’(오혜성)와 여자친구 최엄지, 마동탁 등 세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와 신체적 핸디캡을 가진 야구선수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 기량의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인만화이다. 당시 수백만권이 팔려나갔고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동원 30~40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폭발적 인기의 배경이라면.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당시의 시대상황하고 맞았고 또 하나는 만화가 추구하던 가치관을 뛰어넘은 겁니다. 1980년대 암울했던 대학가 분위기에 ‘네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강한 것이 아름답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살고 싶다’ 같은 대사가 젊은이들의 마음에 와 닿았지요. 아이들이 보던 만화를 빼앗아 보던 부모나 선생이 ‘어, 내 이야기이네’하며 만화에 몰입하게 된 겁니다. 기존의 만화와는 달랐던 거지요.”
-다른 만화들도 영화로서 성공했는지.
“무명의 감독이나 배우들이 만든 탓에 별 재미는 못 봤어요. 제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배우가 6개월 연습해 프로처럼 공을 잘 던질 수 있겠어요. ‘영화복’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드라마로 소개된 ‘폴리스’가 인기가 있었어요.”
-재물복은 어떤가.
“‘삼국지’는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 아직 선인세도 못 갚았고, SF 애니메이션 ‘아마게돈’ 제작으로 큰 손해를 보기도 했어요.”
-‘천국의 신화’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30세부터 준비해 40세에 한 권 냈는데 신화 속 남녀가 옷을 입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청소년위해물 판정을 받았어요. 동물과 사람의 구분이 없던 때 도덕이라는 기준이 서 있지 않은 원시 자연을 음란하다고 기소한 겁니다. 벌금 300만원 내면 됐겠지만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였어요. 6년 걸린 재판 결과는 ‘무죄’ 란 단어 하나였어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40대에 만화를 그리지 못했어도 후회는 하지 않아요.”
-만화에 대한 철학이라면.
“제가 그리는 모든 만화에 우정‧사랑‧도전‧승리 등 4가지 덕목을 담아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자유로운 의지’, ‘스스로 일어서는 독립의지’, ‘절대 자존감’ 등입니다.”

이현세 화백은 노인들에게 소개할만한 만화를 부탁하자 ‘삼국지’와 ‘한국사’를 권했다. 이 화백은 “우리 세대가 배운 역사 용어, 개념, 고증 등 달라진 부분이 많아 꼭 ‘한국사’를 읽어보기를 권한다”며 “그래야 손주들과 벽을 허물고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