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실 지켜주기’ 모임
‘분향실 지켜주기’ 모임
  • 정재수
  • 승인 2007.10.0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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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언론인

사회생활을 하다가 보면 ‘○○회’, ‘□□클럽’ 하는 각종 모임들을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동창회는 말할 것도 없고, 낚시회나 바둑모임 또는 테니스클럽 같은 동호인모임과 친한 사람끼리 정기적으로 만나 교유하는 친목회가 대표적이다. 또한 친지나 친척들 또는 동업자들끼리 만든 계모임도 있다.

최근에는 특이한 모임이 등장했다. 서로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60·70대 노년층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몇 년 전 3월 7일에 발족했다 해서 모임의 명칭을 ‘3·7회’(가명)라고 붙였다.

3·7회 회원들은 매월 7일에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활동의 거의 전부이지만 이 모임에는 불문율 하나가 있다. 그것은 회원이 별세했을 때 다른 생존 회원들이 반드시 그의 빈소에 가서 밤을 샌다는 것이다.

실제로 3·7회가 발족했을 당시에는 회원이 모두 14명이었는데 그 동안 2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회원들이 고인의 장례식 날까지 교대로 빈소를 꼬박 지켰다는 것이다. 3·7회가 이런 관례를 만든 것은 자식들이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회원들이 다수여서 유사시 그 자녀들이 귀국하려면 미국의 경우는 최소한 이틀이나 걸리기 때문에 빈소가 쓸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래에는 장례식 풍습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 주로 집에서 치르던 장례를 대부분 외부의 장례식장에서 거행한다. 장례식장 중에서도 큰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례풍습이 이렇게 변한 것은 핵가족화에 따른 혈연관계의 약화 추세와 아파트 중심의 주거양식, 그리고 번거로운 장례절차와 실용주의 생활풍조가 가속화된데 따른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면서부터 빈소의 개념도 달라졌다.

원래 빈소라는 것은 발인 때까지 사자의 관을 안치하는 장소를 지칭한다.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주로 지하의 냉방된 영안실에 관을 안치하기 때문에 문상객은 영안실에서 멀리 떨어진 별도의 방에서 조문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문객이 찾는 곳은 빈소가 아니라 ‘분향실’이라고 부른다. 물론 분향실은 이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빈소는 아니지만 고인의 영정을 배치하고 조화로 장식했기 때문에 과거의 빈소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3·7회가 작고한 회원의 분향실을 지키는 것은 빈소를 지키는 것에 준한다고 할 수 있으며, 살아남은 회원들이 유명을 달리한 동료회원에게 마지막으로 표하는 우정어린 환송이라 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 장례를 치르는 방식은 농어촌에 전해지고 있는 전통적인 부락중심의 장례방식에서부터 최근에는 장례업체 말고도 교회나 성당, 사찰에서 신도를 위해 운영하는 장례위원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장례비용이 자칫하다가는 수백 내지 1000만 원을 넘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장례비용을 마련하느라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장례비의 일부라도 조달하기 위해 장례업체가 운영하는 상조회 조직에 가입하거나 금융기관이 개발한 장례보험을 계약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두 제도는 일정 금액을 납부한 다음 장례비를 지급받는 점은 유사점이지만 아직 채 정착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하면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교포의 경우는 상조회 제도가 제법 잘되고 있는 것 같다.

현지언론 보도에 의하면 뉴욕의 한인노인상조회는 지난 5월 10일 현재 가입회원이 3120명에 달하는 대규모 한인단체로 성장했다 한다. 이 노인상조회가 1996년 5월에 발족할 때만 해도 회원수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2005년도부터 해마다 400명 내지 500명이 늘어나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금 규모는 72만 달러에 이르는데 이 돈은 처음 가입한 사람으로부터 받는 150달러의 입회비와 연 30달러의 회비로 적립된 것이다.

회원은 A조, B조, C조 등 3개조로 구성되어 자신이 속한 조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10달러의 경조비를 내야하며 상조회 측에서는 1만2000달러(약 1100만 원)를 사망자의 유가족에게 즉시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 액수면 장례를 치르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3·7회의 분향실 지켜주기 이야기가 뉴욕의 한인노인상조회 이야기로 발전하고 말았지만, 두 경우에 공통적인 사실은 회원들이 상부상조하는 가운데 각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비한다는 점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수의와 관을 마련해 두는 풍습이 있었다. 인간이 죽음에 대비하는 것은 남은 자기 인생을 보다 보람 있게 사는 방법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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