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작성 뒤 직접 관에 눕는 임종체험 호감
유서작성 뒤 직접 관에 눕는 임종체험 호감
  • super
  • 승인 2006.08.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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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人生, 얼룩이 이다지 많았던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임종체험이 인기다. 임종체험이란 죽음을 맞이하는 가상의 임종상황을 설정, 유언장을 작성한 뒤 수의를 입고 실제로 관에 들어가 눕는 체험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기회를 갖는 이벤트다. 심기일전을 위해,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단순한 호기심 등 참가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체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깨우침은 삶과 가족의 소중함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는 한 젊은이는 앞으로 더욱 정성껏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4월 15일 오후 6시,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조읍리 ‘케이엘씨씨’(KLCC) 사무실. 임종체험에 직접 도전하기 위해 미리 약속을 해둔 터였다.

 

케이켈씨씨는 특허권을 갖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임종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다. 이 회사 고민수 원장이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지난 2004년 11월 창업한 ‘라이프컨설팅’이 모태가 돼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종체험이 시도됐다.

 

이후 직접 관에 들어가 임종을 체험한다는 형식과 내용의 특이함 때문에 주요 신문과 방송 등 거의 모든 매체가 임종체험을 취재, 보도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김준수 홍보실장으로부터 간단한 회사소개를 전해 듣고 곧바로 체험에 들어갔다. 첫 순서는 영정사진 촬영. 유언장과 함께 관 위에 놓을 영정을 만들기 위해 이날 참가자 6명 모두 2층 강의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영정사진이라는 말에 슬쩍 겁부터 났다. 죽음이란 단어가 그 때처럼 사실적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사진촬영에 이어 김시열 전문강사로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 임종체험을 통한 삶의 재설계 방법 등에 대한 간단한 강의가 이어졌다.

 

김 강사는 “성찰과 반성, 발견과 계획의 순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잘잘못을 따지는 한편 잘못된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반성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미래의 계획을 세워 실천하도록 돕는 것이 임종체험의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달걀은 스스로 깨지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된다”는 김 강사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강의가 끝난 뒤 10분쯤 휴식을 갖고 유언장 작성에 들어갔다. 유언장. 죽음에 이르러서 부탁하여 남기는 말, 또는 죽은 뒤에 법률상의 효력을 발생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 하는 단독 의사 표시. 사전적인 의미는 그렇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일까. 유서 용지가 책상 위에 놓였을 때 ‘속 깊은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차라리 반성문이라는 표현이 옳을 듯 했다. 가진 재산도 변변찮고 남겨 줄 것이라야 조금의 빚과 이름 석 자 뿐이니 짧은 삶을 정리하면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일 듯 했다.


본격적으로 유서를 써 내려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임도 잠시.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았다. 아내에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10분쯤 지났을까.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흘린 눈물 가운데 가장 맑고 뜨거운 것이 아닐까.

 

적막감마저 감도는 엄한 분위기가 유서를 채우는 참가자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했다. 유서의 빈자리가 조금씩 줄어들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뜨거운 감정은, 회한과 애증의 결정이었다. 유서는 금세 눈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겨우 삼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얼룩진 그림자가 그토록 많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시간여에 걸쳐 유서 작성을 끝내고 3층에 마련된 체험실로 올라갔다. 참가자들 손에는 유서를 끼운 영정사진이 들려있었다. 검정 도포와 갓을 쓴 저승사자가 앞장서 계단을 올랐다. 음습한 분위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계단을 따라 장식된 촛불이 지난 세월을 말끔히 태워버리는 듯했다.


3층에 들어섰다. 열을 맞춰 가지런히 놓인 나무 관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실내 어디선가 느리고 슬픈, 장송곡(葬送曲)보다 더 구슬픈 음악이 새어 나왔다. 여섯 명의 참가자가 하나씩 자신의 관을 찾아 섰다. 이어진 순서는 유언낭독. 참가자가 많을 때는 대표로 1~2명이 읽는다지만 이날은 6명 모두 자신이 쓴 유언을 읽었다.


기자가 가장 먼저 앞에 섰다. 감정을 억누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유언장을 든 손이 흔들렸고, 볼이 떨렸다. 둑이 터진 샘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 30여년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뒤이어 나온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은 서로 이해하지 못해 빚었던 부모님과의 갈등을 해소했다. 자식이라는 짐을, 부모라는 짐을 그토록 무겁게 여겼던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얘기했다.

 

고등학생 아들과 손잡고 행사장을 찾은 모자는 애틋한 가족애로 참가자들을 울렸다. 아들은 바쁘게 일하는 어머니께 “점심 꼭 챙겨 드시고 일하시라”며 눈물을 흘렸고, 어머니는 “건강하게 잘 커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30대 직장인 남성은 세상에 남겨질 어린 아들과의 끈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는 눈치였고, 20대 여성은 지금껏 비워두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부모님의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았다.


관에 들어갈 시간. 조금도 여유 없는 관은 양팔을 가슴 위에 모아 놓도록 했다. 관 뚜껑이 닫히자 “쿵쿵” 못 박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못을 박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 속에 울려 퍼지는 망치소리가 마지막 사형선고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뒤이어 관 뚜껑에 모래알이 쏟아졌다.

 

모래 한 알 한 알이 삶의 파편에 소름끼치도록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돌고 또 돌았다. 역설이었다. 죽음은 삶을 간절하게 만들었다.


이어 관속에 누워 맞은 10분의 명상시간.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껏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있던 욕심과 증오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 나가는 듯 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이 됐다. 관에서 나가더라도 그냥 맨손으로 살고 싶어졌다. 편안하게….


체험과정이 모두 끝이 났다. 관 뚜껑이 열리며 또 다른 삶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엷게 흐르는 미소 속에는 수도승의 해탈이 녹아 있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취재협조 케이엘씨씨 (031)631-6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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