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모작’은 가능한가
‘인생 2모작’은 가능한가
  • super
  • 승인 2006.08.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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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전 생애를 3단계, 4단계 혹은 6단계, 심지어 8단계로 나누는 경향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을 8단계로 나눈 사람이고, 공자는 인생 후반기를 대체로 10년 단위로 쪼개서 15세 배움에 뜻을 두고(志學), 30세 자신이 생기며(而立), 40세 미혹되지 않으며(不惑), 50세 천명을 알게 되고(知天命), 60세 남의 말을 듣고 시비를 판단할 줄 알며(耳順), 70세 생각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從心) 단계로 나누었다.


그런데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발상이 나왔다.

 

미국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인사목회장 리처드 P. 존슨 박사(노인상담학)는 「내 영혼을 위한 리필(Refill for My Soul)」이라는 저서에서 은퇴 후의 값진 생활을 위해 ‘인생의 리필’을 제안했다.

 

‘리필’의 의미는 커피점이나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더 달라고 할 때의 뜻 그대로이다. 잔을 다시 채운다는 뜻도 되고, 두 잔째가 된다는 의미도 된다.

 

존슨 박사는 노인들이 활기찬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 12가지의 조언을 하고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데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꿀 것과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는 대목이다.


노령기에 들어 인생을 ‘리필’ 한다는 표현 대신 ‘인생 이모작(二毛作)’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쓴 이는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최재천(崔在天) 교수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생물학이라는 일반에게는 약간 생소한 분야를 전공한 그는 작년 5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 하라」는 흥미 있는 책을 발간하면서 이 말을 만들어냈다.

 

그 뜻은 은퇴 후의 인생이 ‘여생(餘生)’이 아닌 완전한 후반생(後半生), 즉 ‘제2의 인생’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있게 한 공로자들인 현재의 노년층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자신들의 노후준비를 못한 세대이다.

 

이 때문에 ‘희생의 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 ‘희생의 세대’는 경제적 생활도 불안하지만, 자신들에게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이 없다는 허탈감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고독하다.

 

‘인생 이모작’이라는 용어는 이런 소외되고 무력감에 빠진 노년층에게 정신적으로나마 용기를 주는 표현이다.


이런 용어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최 교수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어떤 용어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면 그것은 한 시대를 풍미하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 교수의 책이 나온 이후 ‘인생 이모작’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 용어를 사용한 공식 행사까지 개최되었다.

 

작년 10월 서울 광진구의 생태공원인 서울숲에서 열린 서울 상징 문화행사 기간 중 거행된 ‘4080 이모작 식(式)’이라는 행사가 그것이다.

 

이 행사는 열심히 일하다가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일선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40까지 인생 일모작을 끝내고 50부터 시작되는 인생 이모작, 즉 빛나는 노년기를 설계하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인생 이모작’을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최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모두 직업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도록 사회구조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노년층 자신들에게도 좋지만 머지않아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연금적자 해소문제에도 숨통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년층의 일자리다.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자신이 일하고 싶다고 바로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로부터 일 할 자리가 주어져야 한다.

 

노인이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젊은이의 일자리도 모자라지만) 노인만이 할 수 있는, 또는 노인에게 더 적당한 일자리, 즉 ‘노인 적성’의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당초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내년까지 노인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한다고 했으나 최근 정부는 이를 2009년까지 30만개 일자리 창출로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이 역시 올해 노인복지예산 1,106억원을 확보해 겨우 8만개의 일자리를 마련 중에 있다.

 

이 숫자는 작년의 3만5,000개 일자리에 비해 130% 증가된 것이기는 하지만 전체 노인인구 440만 명의 60%에 달하는 260만 여명의 근로 희망 노인들의 수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쓰는 각종 과거사 규명관련 총 예산이 1,800억에 달하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예산액수는 턱 없이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현행 고령자고용촉진법에는 노인적성 직종을 계속 확대하고 근로자 3백인 이상의 사업체는 기준 고용율을 5%로 하고 있으나 이것이 권장 조항이어서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최고의 복지정책 중 하나인 재취업이 과연 제대로 될지 아직은 전망조차 하기 어려워 ‘인생 이모작’은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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