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법’ 내년 시행 앞두고 시범사업, 사전의향서 작성 문의 쏟아져
‘웰다잉법’ 내년 시행 앞두고 시범사업, 사전의향서 작성 문의 쏟아져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11.10 10:12
  • 호수 5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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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마다 하루 15~20명씩 방문 신청

[백세시대] #1. 올해 69세의 정철운(가명) 어르신은 지난 10월 23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작되자마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 시범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정 어르신은 지난 2006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전신마비에 의식불명인 어머니를 약 3년간 간병했다. 24시간 침대에 누운 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았던 모친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그는 자신도 그러한 상황이 올 때 자식들에게 짐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했다. 정 어르신은 “인명재천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제가 언제 죽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다만 죽을 때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 말기 암환자인 이순자(58‧가명)씨는 병원 대신 집에서 생활한다. 항암치료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의사로부터 이미 그 어떤 치료도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미리 사전의향서를 작성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씨는 현재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노래교실 등을 다니면서 남은 시간을 즐기고 있다. 

임종기에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등의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시범사업 기관으로 정해진 곳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된다. 사진은 한 사전의향서 시범사업 기관에서 상담사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임종기에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등의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시범사업 기관으로 정해진 곳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된다. 사진은 한 사전의향서 시범사업 기관에서 상담사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가능… 품위 있는 죽음, 남은 가족 위해 선택

사전의향서, 본인이 방문해 작성해야… 작성 후에 변경‧철회도 가능

[백세시대=배지영기자]존엄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웰다잉법’)이 바로 그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멈추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연명의료를 하는 환자의 몸에는 각종 생명유지 장치가 붙는데, 입에 관을 넣어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신장이 망가진 환자에 지속적으로 혈액 투석을 하는 식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배경에는 대표적으로 ‘김 할머니 사건’이 있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08년 2월 폐암 조직 검사 과정에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자녀들은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 이듬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대법원은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려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은 과중한 의료비 지출을 막아 가정경제의 파탄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 우선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나 말기 환자만 해당된다. 임종기와 말기의 판단은 주치의와 해당 분야 전문의 등 2명이 내린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릴 환자 의사도 중요하다. 환자는 미리 사전의향서를 쓰거나 의료기관에서 자신의 의지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10월 23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사전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2개 분야로 나눠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임종을 앞둔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그 외 19세 이상 성인들은 ‘사전의향서’를 시범사업 기관으로 정해진 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시범사업기간에 작성한 사전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모두 정식으로 등록이 되며, 법적으로 유효하다.

그렇다면 사전의향서는 어떻게 작성하면 되는 것일까? 기자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1월 6일 사전의향서 시범사업 기관인 각당복지재단을 방문했다. 

이날 재단에는 사전의향서 작성을 원하는 신청자들의 문의가 쇄도했으며,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자 하는 신청자가 계속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통 하루 15~20명 정도가 찾아온다고 한다. 

신분증 대조해 본인여부 확인

사전의향서 작성을 위해서는 우선 본인임을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 검사가 실시된다. 누구보다 본인의 의사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대리 신청 등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다. 신청자가 성명과 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 등을 적으면 상담사가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을 대조해 확인하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이나 우편으로는 작성이 불가능하다. 

신분을 확인한 후에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원하는 항목에 체크를 하면 된다. 항목별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이다. 모두 선택해도 되고 한 가지만 선택해도 된다. 

재단 측은 이 부분에서 신청자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모든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의미냐는 것이다. 윤득형 각당복지재단 회장은 “사전의향서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고 체크한 뒤 만약 길거리에서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면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많다”면서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에만 해당되므로 그밖의 경우는 당연히 실시된다”고 설명했다.   

‘소극적 안락사’로 오해도

사전의향서 작성이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윤 회장은 “가령 식물인간, 중증치매, 루게릭병 등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된 경우에도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연명의료결정법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임종기’이다. 이는 생명연장의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연명치료를 통해 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전했다.

이후에는 사전의향서 등록기관의 설명사항을 상담사가 자세히 설명한다. 상담사가 설명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담사는 이 과정에서 재차 이해를 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더불어 호스피스 이용 계획과 함께 사전의향서를 가족들이 열람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체크하도록 했다.

위 사항들을 다시 체크하고 서명하면 사전의향서 등록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등록된 사전의향서는 내년 2월 4일부터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운영하는 ‘연명의료 결정 관련 등록시스템’에 올라간 뒤에는 어느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앞두게 되더라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작성한 서류라 해도 언제든 내용의 변경과 철회가 가능하다. 중단을 선택한 연명의료 종류 중에서 취소하고 싶은 게 있다든가 호스피스 이용에 대한 의사가 달라졌다면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으며, 물론 철회도 가능하다.

시범사업기관 중 하나인 대한웰다잉협회 최영숙 회장은 “보통 부모님과 친구들의 죽음을 곁에서 많이 접하는 50~60대에서 사전의향서 작성 참여율이 높다”면서 “평소에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선뜻 작성하기가 어렵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작성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범사업 이전에 작성된 사전의향서는 환자의 의향만 참고할 뿐 법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에 이전에 작성한 신청자는 다시 협회를 방문해 재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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