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도한 도시재생, 폐지 줍던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변신한 마을
주민이 주도한 도시재생, 폐지 줍던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변신한 마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11.10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침체된 마을을 주민 주도로 살려낸 경남 김해 회현동과 경북 영주 구성마을이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회현동 폐지 줍는 노인들로 구성된 회현당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 조합원 어르신이 커피를 제조하는 모습.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침체된 마을을 주민 주도로 살려낸 경남 김해 회현동과 경북 영주 구성마을이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회현동 폐지 줍는 노인들로 구성된 회현당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 조합원 어르신이 커피를 제조하는 모습.

경남 김해 회현당  협동조합 결성, 커피‧참기름 판매… 안정적 일자리 만들어

경북 영주 구성마을    할매묵공장 세워 판매 수익금으로 독거노인 식사 제공

[백세시대=배성호기자]경남 김해 회현동에 거주하는 이 모(79) 어르신은 3년 전만 해도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번 돈으로 겨우 끼니를 때웠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폐지를 줍고도 한 달에 버는 돈이 10만원이 채 안 됐다. 벌이도 적었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몸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런 그에게 ‘회현당’은 희망의 등불로 다가왔다.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일하면서도 이전보다 수입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 어르신은 “더 이상 폐지를 줍지 않고 매일 아침 출근할 수 있다는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민 주도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노인빈곤을 해결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킨 경남 김해 회현당과 경북 영주 구성마을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조직을 설립·운영하고 노인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등 성공적으로 도시재생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이란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등 상대적으로 낙후된 도시에 기존에 없던 기능을 도입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새롭게 도시를 부흥시키는 사업을 뜻한다. 다만 기존 도시재생은 대부분 중앙정부 주도로 추진돼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주도적인 참여가 부족했다. 또 대규모 사업에 치중해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업 추진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민주도로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을 결성해 고령화와 노인 빈곤을 극복한 회현당과 구성마을의 성공은 주목할 만하다.

경남 김해 회현동은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길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특히 노인 중 상당수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연명할 정도로 빈곤도 극심했다. 이를 극복할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을 때 김해지역 복지재단인 생명나눔재단이 나섰다. 

생명나눔재단이 펼치는 기부 사업인 ‘첫손님가게’에 참여하는 가게 주인들이 지원한 3000만원과 시민 535명이 후원한 5284만원과 에어컨 냉장고 테이블(1480만원 상당) 등을 바탕으로 회현당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노인이 직접 생산한 ‘외할머니 참기름’ ‘할매리카노’ ‘할매라떼’를 판매하는 마을 카페를 열어 주민주도의 자립구조를 구축했다.

카페 운영과 경남 1호 참기름 제조의 해썹(HACCP)인증을 획득한 ‘외할머니 참기름’ 판매로  2015년 8000여만원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 1억5000만원을 기록해 1년 사이 두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렇게 발생한 수익금 중 일부는 지역사회 노인을 위해 사용된다. 또 회현당에서 일하는 어르신은 쉼터인 ‘회현객당’을 통해 아침·점심식사를 무료로 제공받고 하루 두 시간 일을 하며 한 달에 30만원 가량의 안정적인 급여를 받고 있다. 

임철진 생명나눔재단 사무총장은 “침체된 원도심에 회현당 같은 사례가 늘어나 어르신들을 포함한 공동체가 상생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경북 영주 구성마을 할매묵공장.
경북 영주 구성마을 할매묵공장.

경북 영주 구성마을은 영주역 이전과 함께 공동화·노령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주시는 2015년 할매묵공장을 세웠다. 영주시는 도시재생계획 수립 초기부터 지역 어르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찾았고  그 결과 ‘묵’이라는  콘텐츠를 찾아냈다. 

할매묵공장은 지난해 11월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를 받았고 현재 16명의 지역할머니가 중심이 되어 직접 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모두 어엿한 조합이사로 등록돼 조합 운영도 함께하고 이익도 나눈다. 

최연소 조합원인 권분자(67) 씨가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다. 초기에는 권 대표 집에서 묵과 두부를 만들었지만, 수요가 점차 늘면서 올 3월 대지 424㎡, 건축면적 122㎡의 번듯한 창고형 공장으로 옮겼다. 

공장에서는 5~8명의 어르신들이 한 조로 일한다. 맷돌에 갈아 만든 메밀가루를 솥에 부어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이고 뜸을 들여 냉장고에 식힌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진공포장하고 상표를 붙이면 먹음직스런 묵이 탄생한다.

권 대표는 “순수하게 영주에서 나는 콩과 100% 국산 메밀로 첨가물 없이 두부, 묵을 만들어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고 귀띔했다.

급여를 지급하고 남은 수익금은 ‘구성마을 도시재생사업 운영위원회’에 적립해 독거노인 식사대접, 생활텃밭, 묵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에 사용된다. 국토부에서 선도지역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최우수’ 등급을 받아 전국 도시재생사업의 표준 모델로서 각광을 받기도 했다. 묵공장은 이제 수익금의 10%를 매달 적립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정도로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권 대표는 “할매묵공장이 만드는 묵과 두부는 맛과 품질은 보증한다”며 “앞으로 전통음식을 만드는 사업으로 확대해 마을의 젊은 사람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