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홍사덕 전 의원 학창시절 우정
이건희 회장‧홍사덕 전 의원 학창시절 우정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1.17 13:52
  • 호수 5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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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기자]이건희(75)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는가 보다. 요즘은 병실 침대에 기대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볼 정도라고 한다. 가족들이 이 회장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 회장이 좋아하는 영화, 스포츠, 음악을 활용한다는 얘기도 있다. 이 회장과 관련돼 떠오르는 인물이 홍사덕(74) 전 국회의원이다. 6선의 국회부의장을 지낸 홍 의원은 최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직에서 물러나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갔다. 

경북 영주 출신의 홍 의원은 어릴 적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최영 장군의 전기를 달달 외워 친구들과 선생들을 놀라게 했다. 영주시내 책방주인은 책을 좋아하는 홍사덕에게 “책만 구기지 않으면 마음대로 책을 읽어도 좋다”고 선심을 썼다. 어린 홍사덕은 책방에서 꼿꼿한 자세로 책을 읽다가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다 현기증을 일으켜 쓰러진 적도 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책방주인은 홍사덕을 위해 의자를 갖다놓았다.
홍 전 의원이 이 회장을 처음 만난 건 서울사대부고 1학년 때이다. 두 사람은 같은 반이었다. 홍 전 의원은 “한번은 건희가 자기 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장충동에 있는 큰 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병철이란 이름을 몰랐고, 건희가 그런 큰 부잣집 아들이란 사실도 몰랐다. 나는 건희에게 ‘이 집도 ICA(국제차관)로 지은 집이냐, 어디 ICA 캐슬 안 좀 보자’고 놀리면서 따라 들어갔다”고 기억했다.
유도를 한 홍 전 의원과 레슬링을 한 이 회장은 이 집 2층의 넓은 다다미방에서 서로 힘자랑을 하며 겨루기도 했다. 홍 전 의원이 자주 이 회장 집을 찾아와 어울려 놀기만 하자 이 회장 어머니는 홍 전 의원이 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고교 시절 과묵하면서도 정이 많았다. 대학시험이 가까워지자 이 회장은 홍 전 의원을 위해 자기 집 가까운 곳에 방을 하나 구해주었다. 그때까지 홍 전 의원은 혼자 서울에 올라와 가정교사로 남의 집에 입주해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자기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정을 알고 방을 구해준 것이다. 이 회장은 이불이 없는 방에 오리털 침낭을 갖다 주기도 했다. 덕분에 홍 전 의원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홍 전 의원은 “이 회장은 견문이 넓어 아는 것도 많았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나 같은 촌놈하고는 많이 달랐다. 한번은 그가 친구들에게 ‘너희들이 학교 공부를 할 때 나는 인간 공부를 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회장이 잘 웃지 않는 건 아버지로부터 ‘부하 직원들 보는 앞에서 웃음을 보이면 직원들이 해이해 진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남들과 어울리는 걸 피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취미도 비디오 감상, 자동차잡지 구독 같은 것들이다. 그룹 회장이 돼서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도 용인의 서키트에서 유럽의 신형 스포츠카를 몰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홍 전 의원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삼성물산에 원서를 냈다. 당시 월급이 가장 많은 곳이 한국은행과 삼성물산이었는데 한국은행은 채용시험이 끝났다. 홍 전 의원의 입사성적은 1등이었다. 당시 이맹희 삼성물산 부회장(1931~2015)은 홍 전 의원을 자기 방에 두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맹희 부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장충동 집에 놀러오던 홍 전 의원의 얼굴을 알아본 이병철 회장이 “건희 친구니까 네가 데리고 있는 것보다는 건희와 있는 게 낫겠다”며 홍 전 의원을 중앙일보로 발령냈다.
두 사람은 신입기자와 이사로 한 건물에서 근무했다. 홍 전 의원은 “불리한 대우를 받는 동료기자가 있으면 3층 이 회장의 방에 올라가 건의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홍 의원이 1975년 중앙일보 퇴사 후 정계에 입문하고 이 회장은 최고 경영자의 길을 가느라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홍 전 의원은 사석에서 이 회장의 건강을 걱정하고 하루속히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홍사덕 전 의원이 이건희 회장의 병실을 찾아 둘이 학창시절 나눈 우정과 추억을 떠올린다면 회복이 좀 더 빨라질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회장은 경영일선에 복귀하고 삼성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홍 전 의원은 또, 이 회장에게 진 빚(?)을 갚는 셈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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