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의 썸, 쌍화차!
세대의 썸, 쌍화차!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7.11.17 13:55
  • 호수 5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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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맛에 오래 길들었는데

쌍화차 마신 뒤 커피 안찾게 돼

 

노년세대가 많이 찾는 쌍화차

젊은이들이 마실 기회 주면

세대 통합에 도움되지 않을까

오늘 모닝커피 하셨나요? 알려진 대로 아관파천, 그 고통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쓴 커피의 역사는 시작됐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했던 고종이 환궁을 하며 역사에 쓰이고, 손탁호텔 정동구락부에서 커피를 나누며 독립협회의 역사쓰기도 시작됐다고들 말한다. 

역사적 사실은 둘째치고라도, 이후 100여년만인 현재의 우리나라는 가히 커피 왕국이라 할만하다. 그럴만할 것이 1인당 3kg 남짓한 커피를 소비하고 연간 396회에 달하는 커피 잔을 기울이며 세계 6위의 커피수입국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다방커피, 믹스커피, 아메리카노, 라떼 등 이름도 수십 가지이고, 케냐니 콜롬비아니 수입국도 여러 곳이라 신맛부터 쓴맛까지 그 맛도 다양하다. 

카페인이 몸에 맞지 않거나 긴 밤을 하얗게 지새야 하는 올빼미들조차도 조금씩은 홀짝 거리는 그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우리는 ‘바리스타’한다. 이름도 익숙해진 이 단어는 본래 바(bar)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온 말이나, 지금은 좋은 원두를 선택하고 커피기계에서 진한 커피를 추출해 각종 재료와 조합하여 맛을 창조하는 커피계의 창조자들을 이르는 말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대회가 있고, 이미 우리나라 3대 바리스타의 이름은 언론을 오르내린지 오래다. 

필자도 커피를 매우 자주 마신다. 글이라도 쓰는 날이면 어김없이 커피의 김이 솔솔 올라오곤 한다. 제법 커피 맛도 안다고 말할만하다. 맛과 냄새로 커피의 고향을 알아맞히는 일이 종종 있으니 가끔은 어깨가 으쓱하다. 그런 필자가 요즘 쌍화차에 푹 빠져 있다.

쌍화차를 알 것이다. 사전적으로 보자면 백작약, 천궁, 숙지황, 황기, 계피, 감초 따위의 가루를 뜨거운 물에 넣고 대추나 잣을 띄우고 달걀노른자를 넣어서 마시는 차로, 피로 회복과 허한(虛汗)에 효력이 있다. 집에서 다려먹기가 어렵지만, 종로 단골집에 가면 깊다 못해 찐득하기까지 한 쌍화차를 마실 수 있다. 

일단 쌍화차를 먹기 시작하자, 커피 생각은 굳이 하지 않게 됐다. 향긋하고 건강해지는 냄새, 그리고 씹히는 잣까지 한 끼 식사를 가볍게 대신 할 수 있겠다 싶은 쌍화차를 마시며, 새삼 우리는 언제부터 쌍화차를 마시지 않게 됐는지를 생각했다.

쌍화차는 노인의 음료인가? 그 옛날 황금다방, 미도다방, 흑다방, 행운다방에서 계란 동동 띄워 압도적인 냄새와 비주얼을 보여줬던 그 한방차를 요즘 젊은이들은 잘 마시지 않거나, 혹은 싫다고들 한다. 나이 들면 먹게 된다지만, 그렇지도 않다. 본 적 없는 모양에, 맡아본 적 없는 그 음료는 하나둘 모여 있는 노인들의 단골 주문메뉴라는 걸 알기에, 동네 유명한 영감소리 듣는 한둘 말고는 젊은이들은 이내 손을 내 젓는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냄새를 알고 맛을 알고 효능을 알고 있는 노인들의 전용음료가 되어버린 셈이다. 

어려서 못 먹던 커피를 나이 들어 일상적으로 마시게 됐듯, 고종의 용기 있는 도전이 모두의 취향이 됐다. 어디 우리의 일상은 한번 돌고 끝나는 한 방향 회전이던가? 이제 다시 그 흔하던 쌍화차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젊어 못 먹던 쌍화차를 나이 들어가며 주름진 손으로 마시게 되며, 세대는 새로운 취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대신 썸을 탄다지 않는가? 쌍화차에 빠진다는 말보다는 쌍화차를 시음해보는 기회를 가지면 참 좋겠다. 노인의 맛이 얼마나 그윽한지, 노년의 그 취향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그리고 흔들리는 치아로도 씹고 싶은 그 잣은 얼마나 고소한지 말이다. 

나이 들면 맛있는 게 없고 좋은 냄새가 없으며 재미있는 것도 없다지만, 쌍화차가 맛있고 그 냄새가 좋고 잣을 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덜 익은 이 중년의 시점에, 그렇다고 청년도 아닌 이 인생 그 어중간한 지점에서 윗세대의 풍미를 아랫세대에 알리고 싶다. 윗세대의 그 기막힌 취향을 아랫세대에 전하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사를 보니 매운 거 못 먹고 밀가루 못 먹는 아가씨가 남자친구와 썸을 타보겠다고 노래를 부른다. 쌍화차, 그 낯선 한방의 어색함과 넘치는 영양제들이 이길 수 없는 건강한 기분과 우리 젊은 세대가 썸을 타도록 노래를 불러봐야겠다. 

세대 간의 통합을 말하는 요즘 시대다. 먼저 세대의 연애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썸을 타도록 쌍화차로 주선을 좀 해볼까한다. 시대의 썸은 각 세대를 건강하게 하고, 낯선 것을 익숙함으로 자리 잡게 하고, 마지막에는 경험하는 그 고소함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겠는가? 세대의 연애, 21세기 시대의 통합, 그 아교는 쌍화차가 될 것이다. 가자, 세대를 마시러, 가자 시대의 냄새 익히러, 가자 모두가 고소해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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