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꼬리
구미호 꼬리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7.11.17 13:56
  • 호수 5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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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구미호 꼬리

 

구름 한 조각 없는 바다

 

천년을 숨어 산 구미호가

신이나 유영하고 있다

 

얼마나 깊이 빠진 줄도 모르고

 

김철호

 

**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우리가 보는 세계를 파괴하거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무시할 때 시로 환치된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다면 결코 시인이 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를 쓴다면 그건 쓸 필요조차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읽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다른 이가 보지 못한 세계를 발견하고 그걸 이미지로 보여줄 때, 이미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로부터 어떤 깨달음을 찾아내 제시할 때 우리는 그 시에 공감하거나 감동을 받는다. 

이 시가 그렇다. 늘 보는 구름이고 늘 그곳에 있어온 하늘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여우, 그것도 구미호가 산이 아닌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 같은데 정말 이 디카시를 읽으면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가 바다를 신나게 유영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참말 같은 거짓말이 소설이라면, 거짓말 같은 이미지를 참말처럼 믿게 하는 것이 시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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