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32]곧음과 굽힘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32]곧음과 굽힘
  •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17.11.17 18:38
  • 호수 5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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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과 굽힘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다.

 

夫事物之理(부사물지리), 

一直一曲(일직일곡), 

不可以執一論也(불가이집일론야).

 

- 이곡(李穀, 1298~1351), 『가정집(稼亭集)』 권7 「경보설(敬父說)」

 

**

‘올곧다’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마음이나 정신 상태 따위가 바르고 곧다’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곧은 사람’ 하면 으레 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곡 선생의 생각은 좀 다르신 모양입니다.

이양직(李養直)이라는 사람에게 그 벗이 불곡(不曲)이라고 자를 지어 주었답니다. ‘양직(養直)’은 ‘곧음을 기르다’요, ‘불곡(不曲)’은 ‘굽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름과 자가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직(直)에 대해서 불곡(不曲)이라고 말한다면, 논리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의 의미가 어찌 이 정도에서 그치겠는가.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다. 천지처럼 거대한 것 역시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라고 한 것이다. 굽히기만 하고 펴지 않는다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요, 펴기만 하고 굽히지 않는다면 움직임을 지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곧게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을 모른다면 그 곧음을 기를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직일곡(一直一曲)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直而曰不曲。理則然矣。直之爲義。豈止於是乎。夫事物之理。一直一曲。不可以執一論也。天地之大也。或動或靜。故孔子曰。尺蠖之屈。以求伸也。盖屈而不伸。則無以持其靜。伸而不屈。則無以存其動。是以。直而不曲則不能養其直。此一直一曲之謂也。]

그래서 순(舜)임금 같은 성인도 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들었답니다. 더 큰 대의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지요.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아들이 고발하는 것이 결코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도 비슷한 의미입니다.(중략) 

원칙은 원칙이되 사물과 사람에게 가장 마땅한 것을 찾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양직이란 분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의 자를 ‘불곡(不曲)’에서 ‘경보(敬父)’로 고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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