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 이후 첫 ‘존엄사’ 발생… 대상 확대 등 보완 필요
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 이후 첫 ‘존엄사’ 발생… 대상 확대 등 보완 필요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11.24 13:22
  • 호수 5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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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지영기자]지난 10월 23일부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선택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실시된 이래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임종한 첫 환자가 나왔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김 할머니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판결한 지 8년 만에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 의료기관에 입원한 50대 남성 암 환자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환자는 생전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겠다는 뜻을 의료진에게 밝히고 직접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환자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모두 받지 않겠다고 했고, 그 뜻에 따라 편안하게 임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고통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임종했다”면서 “병세가 악화돼 자연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환자 이외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뒤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자연사한 사례가 3~4건 더 있는 것으로 의료계는 파악하고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는 서류다. 여기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 있다고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는 해당 환자의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판단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릴 환자의 의사도 중요하다. 환자는 미리 사전의향서를 쓰거나 의료기관에서 자신의 의지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쓰지 못한 채 임종기에 들어서는 바람에 환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일 때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환자 가족 2명 이상이 환자의 평소 의사라고 일치된 진술을 하고,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이를 확인하면 연명의료 중단을 환자의 의사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환자 가족은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이며, 만약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없다면 형제자매가 진술할 수 있다.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을 때도 담당 의사의 확인을 거쳐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1월 15일까지 △사전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2개 분야로 나눠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임종을 앞둔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그 외 19세 이상 성인들은 ‘사전의향서’를 시범사업 기관으로 정해진 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말기나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례는 10명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이같은 내용을 직접 설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참여자도 1600여명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이에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말기·임종기 환자뿐만 아니라 수개월 내 임종 과정에 들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게 대상자를 넓히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의 뚜껑을 막상 열고 보니 보완, 개정해야 될 부분이 많다. 우선, 말기와 임종기 환자만 작성할 수 있는 연명의료계획서의 대상과 연명의료 중단의 폭을 더 넓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회복할 가망이 없고 2~3일 내 숨질 것으로 예상되는 임종기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어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전 단계의 환자도 작성할 수 있어야 실효성이 커질 수 있다.
또한 생명을 다루는 문제이니 만큼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모니터링을 통해 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 특히 내년 본격 시행을 앞두고 요양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기관의 확충과 함께 질적 개선으로 환자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데 안식처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삶을 잘 살아가는 것만큼 마무리도 중요하다. 흔히 우리는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하지만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법은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이번 기회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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