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뜨개질
한 올 한 올 걸어
가을을 뜨네
걸려 올라 온 국화향
손연식(시인)
**
가을이 무르익어 거의 다 떨어졌다. 단풍이 그렇고 감이 그렇고 은행잎이 그렇다.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고 첫 눈이 온 곳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제 철인 양 더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는 꽃이 국화다.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꽃을 피워 올리는 성정 때문에 예로부터 국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느냐 /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이정보의 시조)’
나는 국화향이 그저 생겨나 흘러나오는 줄로만 여겼다. 적어도 이 디카시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뜨개질을 하는 바늘코처럼 꽃잎이 한 올 한 올 향기를 걸어 꿰고 있지 않은가. 놀랍다. 시인이 그저 스쳐 지나쳤다면 나는 계속해서 국화향이 어떻게 한 묶으로 이 늦가을에 내게로 오는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글=이기영 시인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